이순신 장군의 ‘의리(義理)’
이순신 장군의 ‘의리(義理)’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0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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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모처럼 가족과 함께 영화 ‘명량’을 관람했다. 연일 매스컴이 전하는 한국판 블록버스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화려한 캐스팅, 압도적 컴퓨터 그래픽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명량’. 제목 그대로 영화는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板屋船) 12척으로 330척이 넘는 일본 수군을 격파했던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는 승승장구하며 무패의 신화를 이룩한 조선 수군은 무능하고 고집 센 지휘관 원균의 어긋난 지휘로 칠천량(漆川梁) 해전에서 참패, 궤멸되다시피 했다. 다급해진 선조(宣祖)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을 다시 3도 수군통제사에 임명한다. 수군을 폐지하려는 선조의 방침에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라는 장계(狀啓)를 올리고 한 척을 추가한 뒤 일본 수군과 맞서 싸우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낡은 배로 수백 척의 왜국 수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전투를 앞두고 이순신 장군을 제외한 장수들이나 군사들은 도저히 승산 없는 전투라며 군영을 이탈하는 일이 속출했다. 게다가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왜군의 기세에 눌려 조선군의 사기는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지형과 조류(潮流) 등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세계 해전사(海戰史)에 남을 큰 승리를 거둔다. 그의 리더십이 빛났던 승리였다. 사기가 꺾인 병사들을 데리고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리더십은 바로 그의 말에서부터 나왔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그의 말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모토와도 같은 명대사였다. 군사들과 백성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심리적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이순신이 처했던 그 무렵 세상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거짓과 모함이 심했다. 방비는 허술해 나라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순신은 반듯했다. 모함으로 세번이나 파직(罷職)당하고 감옥에도 갔으나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영화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뜨겁게 장식한 인물의 내면에 주목했다. 충신이면서 수군을 이끄는 리더였고,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버지이자 두려움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었던 이순신 의 고민과 번뇌를 스크린 속에 오롯이 담아냈다.

‘명량’은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여러모로 어지러운 요즘, 책임은 떠넘기고 서로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영화는 우리에게 ‘의리(義理)’를 화두로 던진다. 무모한 싸움조차 망설이지 않게 했던 이순신의 정신은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이상적 리더상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 준다.

아들 이회가 아버지 이순신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왜 싸우시는 겁니까?” “의리다” 순간 이회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의리라면…, 나라의 장수된 자로서 의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저토록 몰염치한 임금(선조)한테 말입니까”

이순신이 냉엄한 투로 말을 할수록 아들의 목소리는 분수를 모르고 커졌다. 이순신은 그런 아들에게 가르침을 주기로 작심한 듯 천천히 말한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따라야 하고, 그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에게 있다.

영화 속의 이 명대사는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충(忠)’에 대한 언급으로 깊이 와 닿는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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