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회-3. 늑대와 달(11)
35회-3. 늑대와 달(1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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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절망 앞에 서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그 울음, 진수라니는 그 울음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 울음은 어쩌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뉘우침과 절망이 뒤섞인, 그리고 거기에 다시 살려달라는 애원이 뒤섞인 울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수라니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절망 앞에서 흐느끼는 여자의 애처로움이 그의 마음을 찔렀다.

“죽여주십시오. 이제 저는 돌아갈 수 없사옵니다.”

한참 동안 흐느끼던 비는 눈물 젖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진수리니는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때 피리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소녀는…….”

“피리소리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단 말이오?”

진수라니 한기는 다그치듯 물었다.

“말을 타고 달렸어요. 꿈인 듯 생시인 듯 그렇게 달빛 속을 달렸어요.”

“누구와 말이오?”

진수라니의 말이 빨라졌다.

“처음엔 그가 누구인지 소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말은 마치 꿈속에서 하는 말처럼 들렸다.

“몇 번이나 그자와 만나소?”

“오늘처럼 밝은 달이 뜨는 날이면 문밖으로 찾아 왔어요…….”

그녀는 감정이 북받치는지 다시 울음을 토했다.

“그때마다 꿈속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피리소리가 들렸어요.”

말을 멈추었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자가 피리의 마법을 알고 있었단 말이오? 달밤에, 피리소리만 들으면 환상 속으로 빠져버리는 당신의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단 말이오?”

진수라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소녀는 모르옵니다.”

진수라니 한기는 그녀의 말이 실망스러웠다. 환상 속에서 젊은 남자와 하나로 엉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떠올랐다. 진수라니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러한 모습을 지우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지워지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하는, 준험한 이 산속으로 오면서도 가지고 있었던 그 기대감이 천길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보름달이 뜨면 몸이 달아올랐던 그녀였다. 젊어서부터 달이 뜨면 사랑의 갈증에 목말라 밖으로 나가던 그녀였다. 진수라니 한기는 그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타고난 피였을까, 그녀의 몸속에 감추어져 있는 야성의 피 때문이었을까.

그 시기를 알 수 없는 오래전에 산 곳에 홀로 살던 한 여자가 발정과 늑대의 피를 받아 낳았다는 그 아이가 나라를 세웠고, 그 후예들은 각각 마한의 서른 세개 성의 성주가 되었다는 그 전설은 사실이었을까.

성주의 딸인 그녀가 그 피를 받은 것은 아닐까. 오래 전에 그렇게 생각한 적은 있었는데, 그 생각이 오늘 다시 진수라니의 머리를 스쳐갔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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