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휘
마지막 지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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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한 ‘마지막 4중주’라는 영화가 있다.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 ‘푸가’의 해체 직전 마지막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이들이 마지막 공연에서 연주할 곡으로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을 선택했다. 장시간 연주탓에 어렵기로 소문난 곡이다.

지난 11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울산시립합창단이 국립합창단과 협연으로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연주했다.

이날 공연은 2년반동안 울산시립합창단을 이끌었던 구천 지휘자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멘델스존의 ‘엘리야’는 헨델 메시아와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함께 3대 오라토리오 중 하나다. 이 곡 역시 합창곡 가운데 가장 어렵기로 소문났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 지휘자는 ‘엘리야’는 합창의 진수를 느낄수 있는 곡이라고 했다. 전국에서 이 곡을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합창단은 극히 드물다고도 했다.

구천 지휘자는 마지막 공연에 왜 이 어려운 곡을 굳이 선택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떠올리다 앞서 말한 영화 ‘마지막 4중주’가 떠오른 것이다.

창단 25년째를 맞은 현악 4중주단 ‘푸가’는 리더의 파킨슨병 진단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되자 결국 해체를 선택한다. 그들은 25년 동안 최상의 팀워크로 환상의 하모니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을 아끼고 사랑해준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한 연주로 보답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베토벤 현악 4중주에 대한 작가 ‘TS 엘리엇’의 평으로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은 아마도 미래의 시간 속에도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속에 포함돼 있다. 끝과 시작이 늘 그곳에 있고, 시작의 이전과 끝의 이후엔 늘 현재가 있다.”

TS 엘리엇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에 이어지는 베토벤의 연주를 시간의 연속성에 빗대어 표현했다. 아마 구천 지휘자도 현악 4중주단 ‘푸가’와 ‘TS엘리엇’과 같은 마음으로 멘델스존의 ‘엘리야’를 선택했을 것이다.

구천 지휘자의 ‘오늘’이 계속되는 한 울산에서의 연주도 끝나지 않는다. 2시간 반이 넘는 공연이 끝나자 기자 옆에 앉은 노년의 신사분이 벌떡 일어나 ‘구천! 브라비’를 외쳤다. 그러자 객석에 있는 수많은 관객이 일어나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박수는 오래토록 계속됐다.

<구미현 취재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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