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로 얼룩지는 베스트셀러
사재기로 얼룩지는 베스트셀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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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회의 회장으로 국내 출판계를 대표하는 박은주 김영사 대표가 지난달 31일 전격 사퇴했다. 출판계와 김영사 측에 따르면 박 대표는 출판유통과 관련한 회사 내부문제와 ‘사재기 의혹’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김영사는 지난 봄 유통 및 마케팅과 관련한 내부문제가 불거져 4월 말 간부 두명에게 대기 발령을 내리고 다른 직원 두명에 대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자체 조사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근래에는 서적도매업체가 김영사의 자회사인 ‘김영사온’에서 펴낸 책을 한 권씩 사라고 직원에게 지시한 일이 외부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사재기 의혹과 관련해서는 김영사가 직접 지시한 적은 없다고 회사 관계자가 밝히고는 있지만 일단 회사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혹의 눈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간 출판계의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일부 출판사의 사재기 행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출판저작권기획사 관계자는 “출판업계가 영세하고 활발한 교류나 경쟁이 없다 보니 특정 도서에 대한 마케팅 비용을 누가 더 많이 쓰느냐에 따라 베스트셀러가 결정되는 시장 구조가 형성돼 있다”며 “당장 눈앞의 돈 때문에 반짝 팔고 빠지려는 출판사들과 일부 저자들의 태도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95년으로, 미국의 문예지 ‘북 맨(Book Man)’이 1개월간 팔린 부수를 조사, ‘베스트 셀링 북스(Best Selling Books)’라는 이름으로 신간서의 목록을 게재한 데서 비롯됐다. 그 뒤 1912년에는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ey)’에서 이러한 베스트셀러를 두 개의 계열, 즉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누어 10위까지 발표했다. 20세기 초 베스트셀러는 이른바 패스트셀러(Fast Seller)였다. 출간 즉시 불티나게 팔리는 책을 의미하던 이 말은 그 뒤 빅셀러니 밀리언셀러니 하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발표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0월, 출판사 설립 자유화 조치 이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로 대형서점들이 주축이 돼 순위매기기에 나서고 있는데, 최근엔 인터넷 서점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그간 국내 대다수 출판사들은 목숨 걸고 베스트셀러에만 매달렸고 그 과정에서 출판인의 양심은 뒷전으로 밀려난 면도 없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광고를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자사에서 펴낸 책을 다량 구입, 이른바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에 나서기도 했다. 뜻밖에 많은 출판사들이 최근 10여 년간 사재기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일단 베스트셀러에 올려놓고 보자는 일부 출판사들의 낯 뜨거운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는 조작이 손쉬워 출판사들은 유혹에 더 취약해졌다. 출판사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각자 배분받은 책을 사들이도록 하는 고전적 수법은 물론,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서평단을 모집한 뒤 ‘띄우려는 책’을 인터넷서점에서 구입케 하고 비용을 보전해 주기도 했다.

다수에게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는 분명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힘이 있는 콘텐츠인 것이다. 그럼에도 회의감이 드는 이유는 자연발생적이 아닌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이미지가 짙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실망하지 않으려면 책을 잘 고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일단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 무조건 대단하게 여기고, 읽지도 않으면서 서재 장식용으로 사들이는 일부 독자들의 도서구입 의식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즉, 남들이 다 보니까 나도 본다는 식의 독서법은 곤란하다. 일단 베스트셀러가 되면 너도나도 베스트셀러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바로 우리네 교양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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