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2. 칼 앞에 맹세(2)
14회-2. 칼 앞에 맹세(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18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뇌왕은 사자가 물러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저자들은 날이 밝으면 그들이 말했던 데로 왕비를 데려가려 할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저들을 타이르고 설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들에게 금은보화를 주어 설득한들, 오늘밤 저들의 잠자리에 저 요기 넘치는 젊은 궁녀들을 풀어 밤을 온통 몽롱하게 만들어 준다한들 신라의 왕명을 받들고 온 저들이 뜻을 거두어들일 수 있겠는가?’

이뇌왕은 곰곰이 생각했으나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호위 군사까지 데려온 저들이 기어이 비(妃)를 데려가려 한다면 저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 비를 내어 놓지 않으면 왕명을 거역했다는 구실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불도 켜지 않은 정전에서 혼자 생각을 거듭하던 이뇌 왕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전으로 돌아왔다.

왕비는 상념에 젖은 얼굴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정전에서 물러난 서라벌의 사자들이 내전에 들러 왕비를 친견하고 서라벌 왕실의 뜻을 전하고 물어갔기 때문이다. 서라벌의 뜻을 전달받은 비가 그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표정으로 보아 비는 그들에게 어떻게든 자신의 뜻을 전했을 것이다.

이뇌 왕은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 비에게 먼저 그 뜻을 물어볼 수 없었다. 순하고 마음이 여린 비에게 ‘서라벌의 명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사랑을 따를 것이냐?’ 라고 물어볼 수 없었다.

왕은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궁성의 뜰을 혼자 걸었다. 이슬에 옷이 축축이 젖을 정도로 궁성의 뜰을 비틀거리며 걸어 다녔지만 서라벌의 사자를 달래어 보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침전으로 돌아왔을 때 비는 울고 있었다.

“잘 계십시오. 이 밤이 전하와 마지막 밤인 것 같사옵니다.”

비는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전했다.

“마지막 밤이라니, 결코 그럴 수 없소. 내가 어떻게 얻은 당신인데 그냥 돌려보낼 수 있단 말이오.”

왕은 감정이 북받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와락 비를 껴안았다. 비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애처롭게 보였다.

“아이들이 장성하면 다시 만나게 될까요? 비록 내가 없더라도 내가 낳은 그 아이가 꼭 이 나라의 왕위를 잇게 해 주옵소서.”

왕은 비의 울음이 섞인 그 애원이 작별의 말처럼 들렸다.

“전하, 이 밤이 전하를 모시는 마지막 밤이라면 신첩은 전하를 위해 죽어도 좋사옵니다. 저를 뜨겁게 안아 밤이 새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도 어쩔 수 없이 밤이 샌다면 저를 가슴에 안아 죽게 해 주십시오.”

비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촛불을 등지고 옷을 벗는 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한 겹 두 겹 옷이 벗기고 마침내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돌아서는 비의 모습을 바라보는 왕은 가슴이 뛰었다. 마치 첫날밤 다소곳이 웃는 비를 안고 침소로 들던 그 순간처럼 쿵쿵 가슴이 뛰었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