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을 마치며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을 마치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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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판화 실기실의 밤은 늘 고요한 편이었다. 작업을 할 때 주로 라디오를 켜 놓았는데 특히 학기를 마무리하고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드는 여름방학 즈음에는 마치 내 개인 작업실이라도 되는 냥 공간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실기실 창문너머 전해지는 밤공기와 어우러진 풀벌레 소리가 하루 종일 서서 작업을 해야 했던 내게는 커다란 몸과 마음의 위안이었다.

그렇게 두 번의 여름과 겨울을 보내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당시 판화과에서 판화과 대학원으로 같은 과를 선택해 왔던 동기들과는 달리 서양화에서 판화로 전향했던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또 울산에서의 가족과 함께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서울에서의 홀로서기는 외롭고도 힘든 인생의 전환이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대학원 실기실에서도 고요한 밤을 홀로 맞이하는 날이 많았다. 모두가 개인 작업실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혼자였고 또 많이 쓸쓸하고 힘들었지만 목판화를 하고 있는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다. 새벽시간 작업하던 걸 정리하고 텅 빈 집으로 향하면서도 내일 찍을 작품내용을 생각하면 빨리 이 밤이 가고 아침이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즐거움에 겨워 해나가던 목판화 작업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작가의 길을 가는 내게 주변에서는 “그걸 한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느냐”, “젊은 애가 뭘 그렇게 고루한 전통작업을 하느냐”, “아이고 진짜 노동이네. 힘들겠다. 그냥 페인팅을 하지” 이런 반응들을 보였다.

때로는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잘 가고 있는 건지 스스로를 의심할 때도 있었지만 작업을 하면 할수록 타인의 생각은 단지 스치는 의견일 뿐이었고 내가 가야하는 길이 더 선명하고 분명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0일, 울산에서는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이라는 국제전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이 세번째 행사였고 지난 몇 달간 이 행사의 운영위원이었던 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일과 관련된 스케줄만이 생각의 날개를 달고 윙윙거렸다.

지난해의 것보다 더 잘하고 싶었다. 더 인정받고 또 보여주고 싶었다. 목판화를 고집해온 결과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들을 “수고 많았구나” 이말 한마디로 위로 받고 싶었다. 마음에 그리고 새기면 언젠가는 이뤄지는 것인지 많은 분들의 고군분투와 헌신 덕분에 이번 행사는 큰 성공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

그 첫번째 성과로는 세미나, 체험행사, 특별소장전 등을 통해 목판화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 확산되고 관람태도에 있어서도 사뭇 진지해 졌다는 점이다. 전시장을 찾은 초,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판화워크샵 문의라든지, 일부러 팀을 형성해 방문한 원어민 강사들의 관심을 보며 앞으로의 행사에도 시민들의 관심은 높아지리란 확신이 생겼다.

두번째 성과로는 세계유일의 목판화 축제가 산업도시로 알려진 이곳 울산에서의 브랜드화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개막식에 참여하고 세미나 발제를 해주신 중국 후베이미술학원 판화과 장광후이 교수나 일본판화협회 이소미데루오 회장 역시 이 부분을 인정하고 앞으로 이 행사의 발전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고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마지막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작품의 높은 판매율과 동시에 한국현대목판화협회 회원들이 보여준 성원과 관심 또 울산제일일보와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 운영위원회 운영진 및 스텝들의 관계가 보다 더 탄탄해지고 체계적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앞으로의 어떤 과제도 함께 해결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줘 마음이 든든해지는 대목이다.

아무리 큰 국제행사라 할지라도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궈내는 것임을 행사를 마치며 새삼 실감해본다.

<이하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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