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와 리더십
인사(人事)와 리더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0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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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필자는 본보 칼럼을 통해 잔잔한 감동의 사연 하나를 소개한 바 있다. 미담의 주인공은 바로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고위 공직자의 ‘아름다운 처신’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줬던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대법관을 지내기도 한 그는 퇴임한 바로 다음 날부터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등산 점퍼와 펑퍼짐한 바지에 목도리를 두른 채 TV뉴스 화면에 비친 그가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슈퍼 아저씨’였다.

대법관의 지위에도 올랐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관(前官) 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에서 얼마를 받았네’ 말들이 많았지만 그는 자유롭기만 했다. 과도한 전관예우로 비롯된 비판 여론과는 무척 대비된 모습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전관’이 우리 사회에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가슴 뭉클했다. 그는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에 몸담는 건 적절치 않다며 공개적으로 거절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민검사’ 안대희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의 덫에 걸려 국무총리 지명 엿새 만인 지난 달 28일, 자진사퇴했다. 그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안 총리후보자는 짤막한 사과를 뒤로 한 채 떠났지만, 박 대통령은 무거운 부담만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인사’는 사실 출발부터 꼬였다. 초대 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도 지명 닷새 만에 옷을 벗었다.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발목을 잡았다. 그 뒤로도 인사 문제의 불협화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번 ‘안대희 낙마’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는 해묵은 숙제인 ‘인사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를 다시금 뼈아프게 느꼈을 것이다. 인사검증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안 전 대법관의 변호사 수입이 ‘5개월간 16억원’이었다는 ‘사실’은 초보적 수준의 검증 절차인데도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렴 이미지를 갖춘 인물 선정에만 너무 집중하다 국민정서를 읽지 못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크게는 한 국가로, 작게는 한 조직에까지 두루두루 적용되는 말이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그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뽑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어떤 자리에 배치할 것인가는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그 조직의 리더가 늘 고민해야 하는 주제인 것이다.

특히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은 지도자의 정치철학도 중요하지만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이 가는 사람을 중용하는 일이다. 지도자의 주변에는 언제나 과잉충성자들이 있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사청문회 전 여러 단계를 거쳐 검증을 시도한다. 먼저 FBI가 사전조사를 실시해 보고서를 작성한 뒤 그 절차 안에서 공직자 후보 본인에게 수십개 항목에 이르는 질문서를 제공한다. 그러면 답하게 하는 과정에서 많은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난다고 알려져 있다. 대통령 면접을 거쳐 인준 대상 공직자의 인준안을 제출하고 여론 검증을 거친 다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공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춰볼 때 우리의 경우는 이번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사전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거나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맹자는 “큰일을 할 군주에게는 반드시 자기가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신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존(至尊)이나 황제(皇帝)가 독선과 오만이 있는 한 진정한 리더십은 탄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사가 만사’임을 뼈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할 오늘, 인사권자가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할 소중한 가르침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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