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신시대에 산다
우리는 불신시대에 산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0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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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떠나보낸 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덤덤했다. 희미하게나마 예의상의 미소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가 태운 담배 연기가 자욱한 사무실이 막막한 그의 심경을 대변했다. 그의 말투는 또박또박했지만 흥분된 말은 두서가 없었다. 강렬하게 눈을 맞췄지만 눈빛은 공허했다. 그의 어깨는 손을 얹으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조여 오는 기분이었다. 그가 인터뷰 내내 반복했던 “믿지 못하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병원은 물론 경찰과 검찰이라는 수사기관, 법원이라는 사법기관도 믿지 못했다. 이들이 얼마든지 손을 잡고 자신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 과정에 대해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그는 인터넷 신문고와 블로그, SNS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면의 불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의 사회적 신뢰는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믿음’이라는 바탕 위에 세워져 있다. 어떤 역할을 맡은 사회구성원이 그 책임을 다 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이에 속한다. 의사가 환자를 잘 치료해 줄 것이라거나 판사가 법정에서 잘잘못을 잘 가려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과정에 대한 믿음이다.

최근 우리 삶에는 일상화된 ‘의심’이 있다. 혈연, 학연, 지연, 돈과 권력 등에 의한 결과물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는 뜻이다. 이 모든 ‘힘’의 정점에서 비켜서 있는 이들의 억울함이 그만큼 쌓여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조자 ‘0’명이라는 참담한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했다. 사회적으로 결속된 존재로 태어나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다. ‘국가’가 더 이상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이다.

지금은 개인에게 ‘왜 믿지 못하냐’는 핀잔이 아니라 ‘불투명한 과정’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필요한 시기다.

<주성미 취재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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