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길
치유의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5.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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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공허감과 깊은 슬픔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 당신의 세계는 그대로 멈춰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떠나간 이들에 대한 비통함을 안고서 상실의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20세기 최고의 정신의학자이며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상실 수업’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치유의 메시지가 오늘따라 더욱 절절히 가슴을 파고든다. 세월호 참사로 입은 엄청난 마음의 상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저려 온다.

정부가 앞장서 참사의 원인을 철저하게 따지고 비극의 재발을 막는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아픈 상처가 잘 치유되도록 우리 모두가 따뜻한 마음을 모아 위로를 아끼지 않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에 오는 상실의 현실은 깊은 정신적 충격과 절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아픔과 우울을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 정신적 치료가 적극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게다가 집단의식이 강한 정서 때문에 우리 국민은 이번 참사를 자신의 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고 소식을 접한 뒤로 국민 상당수가 밤잠을 설치거나 무기력감을 호소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만약 이런 현상이 계속 이어질 경우 자칫 집단 우울증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었던 적이 있거나 평소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사망자나 사망자 가족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책임을 통감하며 자책하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 이후 우울증 증상이 악화돼 병원을 찾는 환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뇌 발달이 완성되지 않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사고 소식을 자주 접했다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어른들의 특별한 관심과 지도가 필요할 것이다.

종교를 가졌다면 템플스테이나 명상치유센터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권하고 싶다. 그곳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극복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가해 멍든 마음을 치유하며, 고통 또한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현실 도피적이거나 중독성이 있는 활동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힘든 데도 잘 버텨온 자신을 격려하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조언 또한 잊지 않는다.

근래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아르헨티나 심리사회연구센터 에델만 박사는 오랜 기간 군부독재 하에서 집단적 학살과 실종이 자주 발생했던 아르헨티나의 경험에 비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집단적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의 의도적인 폭력이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이든 집단적 트라우마가 발생한 뒤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과 정의’라고 강조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치유와 위로, 휴식이 필요한 때다. 국가는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슬픔과 허탈감에 빠져 있는 국민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자칫 국가적인 정신후유증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가 ‘상실 수업’에서 제시한 상실 극복을 위한 10개 항목을 찬찬히 마음속에 담으며 진정한 ‘치유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신은 감당할 만큼만 고통을 준다’ ‘슬픔에게 자리를 내주어라’,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울라’, ‘떠나간 이가 해왔던 것, 그것을 하라’,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려놓으라’, ‘몸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 ‘슬픔에 종결은 없다는 것을 알라’, ‘상실의 밑바닥까지 발을 디뎌보라’, ‘신의 이해를 구하지 마라’ ‘상실은 가장 큰 인생의 수업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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