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대로 살아온 남자, 드디어 입을 열다
소신대로 살아온 남자, 드디어 입을 열다
  • 정종식 기자
  • 승인 2014.05.2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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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식 전 울주군의회 의장
 

사람들은 그를 ‘소신대로 살아온 남자’라고 한다. 20대 후반 신문기자를 거쳐 30대 후반 군의원으로 정치인이 된 뒤 내리 3선을 기록하기까지 그는 줄곧 한 우물만 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6·4지방선거를 3개월여 앞둔 지난 3월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정치적 동지’를 돕기 위해 군의원직을 사퇴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선출직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인식(49·사진) 전 울주군의회 의장 이야기다.

“사퇴할 당시만 해도 김두겸 전 청장과는 전혀 조율이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박맹우 시장의 움직임도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김기현 의원 쪽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사무실이 썰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선대 본부장을 맡았습니다” 그는 사퇴직후 강길부 의원의 시장예비후보 선거대책본부 사령탑이 됐다. 그와 강 의원의 ‘두 번째 고독’이 시작된 셈이었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중도 사퇴하고 김두겸 전 남구청장이 컷-오프(경선 사전심사)에서 탈락된 뒤 강 예비후보 캠프에 합류하기까지 그는 숱한 마음고생을 했다. “정치적 신념을 함께 해 온 사람이 코너에 몰려 있는데 그를 외면하는 건 인간적 도리가 아니죠” 그래서 그는 끝까지 강 예비후보 캠프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강 예비후보는 같은 당 김기현 예비후보에게 석패했다.

“솔직히 섭섭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선 전부터 결과에 승복할거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김 후보 당선을 위해 강 의원이 총괄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고 저는 울주군지역 총괄 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번 경선과정에서 잠깐 동안 진영이 나눠지긴 했지만 사실 그와 김기현 후보는 오래전부터 인간적 유대를 쌓아온 사이다. 최 전 의장의 친형인 최의식(57)씨와 김 후보는 절친한 친구다. 2005년 최 씨의 부인이 서울대 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 사람도 김기현 후보였다.

최 전 의장이 강길부 의원을 처음 만난 건 2004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다. 당시 강 의원은 경기대 교수를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하던 열린 우리당 울주군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 받아 당선됐다. 최 전 의장은 그 보다 1년 앞서 범서지역 보궐선거에서 기초의원에 당선돼 있었다. 지역 정서상 2선 고지에 도전하는 한나라당 권기술 의원을 선택하는 게 그에게 유리했지만 최 전 의장은 강길부 후보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실과 바늘’관계가 시작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공명정대합니다. 우리 공직자들이 가져야 할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죠” 주위에서 만류했을 텐데 왜 강길부 후보를 선택했느냐고 묻자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이다. 30대 군 의원은 그런 강 의원을 도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범서지역 선대 본부장을 맡았다. “범서지역에는 젊은층 유권자가 많습니다. 젊은층과 강 의원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한 셈입니다”

그는 강 의원 예찬론을 계속했다. 강 의원은 중앙부처에서 예산을 가져 오는데 특히 뛰어나다고 했다. 사업의 비교, 명분, 효율성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공무원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한다고 했다. “혁신도시 이전 문제가 나왔을 때 당시 노무현 정부는 3개 정도만 울산으로 옮기려고 했답니다. 중앙 부처들이 ‘울산은 부자 도시’라며 3개 이상은 안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러나 강 의원이 석유공사, 근로복지공단, 동서발전 등 울산지역에 맞는 기관들을 제시하며 장점을 설명해 11개로 늘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 강 의원이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되면서 최 전 의장에게도 시련기가 찾아왔다. 그들에게 ‘첫 번째 고독’이 엄습한 셈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지방의원들도 당적을 갖게 됐는데 2008년 MB 정부가 들어서자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지고 있던 군의원들이 몽땅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강 의원 옆에는 최 전 의장만 남게 됐다. “당시는 사람들이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으니 그럴 만도 했죠”

하지만 강 의원에 대한 신의, 의리 때문에 그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다고 한다. 강 의원이 낙마하면 자신도 군의원 공천에서 탈락할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가 가장 고통스런 시기였다고 그는 회상한다. “만나는 선후배나 친구들마다 의리, 명분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앞날을 위해 정당을 바꾸라고 했어요. 원망도 많이 들었습니다” 자신도 인간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단다. 하지만 그에겐 의리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강 의원과 함께 탈당했다. 그리고 무소속 강길부 후보를 도와 울주군 지역에서 다시 당선시켰다. 이어 강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그도 당적을 함께 했다. 2012년 총선에서 강 의원이 3선을 기록했고 최 전 의장도 지방의원에 3번째 내리 당선됐다.

“적도 없고 동지도 없는 게 정치판이란 말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당장은 불리할지 모르지만 정치인일수록 소신을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 선진된 면을 보여줘야 지역민들이 정치인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인정할 것이라고 했다. “제가 같은 지역에서 세 번씩이나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정치적 소신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전 의장은 20대 기자시절에도 소신 때문에 법정에 선 적이 있다. 당시 60대 여성 근로자가 산재를 당해 중소기업에 피해 보상을 청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사실을 추적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체의 고문 변호사로 있던 지역 유력 법조인과 충돌이 빚어져 곤욕을 치렀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도 지금처럼 의리와 소신을 지키면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소신으로 사는 남자인건 분명한 것 같다. 글=정종식 기자·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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