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살신성인’
다시 쓰는 ‘살신성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5.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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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보건복지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여객선 안의 승객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고(故) 박지영, 김기웅, 정현선씨 등 승무원 3명을 의사자(義死者)로 선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고 당시 승무원 박씨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구조선에 오를 수 있도록 돕다 자신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결혼을 앞둔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씨와 사무직 승무원 정씨 또한 사고 당시 학생들의 구조를 돕고 선내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숨지고 말았다.

‘탈출 1호’를 기록한 선장과 마치 이를 뒤따르듯 보여준 일부 선원들의 낯 뜨거운 행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의사자 3인의 희생정신에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보건복지부의 이번 조치가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는 지난해 8월 2일자 본보에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그 무렵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여객기 착륙 사고에서 우리 승무원들이 펼친 필사적 구조상황을 언급한 내용이었다.

당시 아시아나 승무원인 이윤혜, 유태식, 김지연, 이진희, 한우리씨는 여객기가 비상 착륙한 뒤 ABP(협조 손님)들과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300명의 승객을 비행기 밖으로 모두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 다음 비행기가 화염에 쌓이며 폭발하기 직전에서야 기내에서 빠져 나왔다.

그야말로 살신성인의 정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고,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했던 상황을 긴밀하고 침착하게 마무리 지은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고기 탑승객이었던 힙합 공연 프로듀서 유진 앤서니 나(한국명 나유진)씨의 증언을 통해 “몸집도 작은 여승무원은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채로 승객들을 등에 업고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지만 여전히 너무나 침착했다”고 그 당시 상황을 전한 바 있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는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선장과 일부 선원들의 부끄러운 행동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살신성인의 아름다운 기록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고(故) 이수현씨의 사례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쯤 일본 도쿄 지하철 야마노테센 신오쿠보 역.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 사카모토 세이코씨가 플랫폼에서 발이 미끄러져 철로에 떨어졌다. 만취해서인지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역에는 전동차가 곧 도착한다는 벨이 울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때 건너편 플랫폼에서 갑자기 한 젊은이가 철로로 뛰어들었다. 그는 사카모토씨를 붙잡고 일으키려 했다. 그 때 한 사람이 더 내려와 거들었다. 바로 그 순간 전동차가 진입했고, 셋은 함께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맨 먼저 건너편 플랫폼에서 뛰어든 젊은이는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난 이씨는 운동을 좋아하는 고려대 무역과 4학년 휴학생이었다. 그날도 이씨는 아르바이트하던 인터넷 카페에서 일을 끝낸 뒤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전동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 사고를 취재한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술 취한 승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던진 살신성인’이라며 이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크게 보도했다. 국경을 초월한 그의 의로운 행동에 일본 열도는 한 동안 큰 감동으로 출렁거렸다.

그로부터 1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신오쿠보 역사(驛舍) 한쪽 벽의 동판에는 한글로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쯤…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을 바쳤습니다…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깁니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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