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도 마다하고 훌훌 떠나는 ‘이삿갓’
공천도 마다하고 훌훌 떠나는 ‘이삿갓’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5.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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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남구의회 전 의장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요즘 정치권 최대 화두는 공천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黨)에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이 공천결과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결과를 수용하면서도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이보다 더 많다. 하지만 공천을 준다 해도 ‘마다’한 사람이 있다. 다음 달 임기를 마치면 그는 미련 없이 지역정가를 떠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를 ‘떠나가는 이삿갓’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는 능청스럽게 “능력도 없고 방 빼라고 해서 쫓겨 나간다”고 했다. 남구의회 이상문(55·사진) 전 의장 이야기다.

마음을 접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를 지지해 준 사람들의 눈초리가 가장 따가웠다. “실컷 뽑아 줬더니 이제 와서 그만두느냐. 처음부터 하질 말든지. 섭섭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지방선거 공천신청 마감일 하루를 앞두고 부인과 함께 멀리 경북지방으로 떠났다. “정치는 마약 같은 겁니다. 정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엉뚱한 곳에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그리 쉽지 않아요” 그는 올라갈때 마다 몇 계단 올라왔는지 뒤 돌아 봤단다.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하면 뒤이어 올 충격이 두려워 그랬다고 한다. “위에 올려놓고 밑에서 사다리를 빼버리면 못 내려오죠. 주위에서 만류하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는 정치인들 많습니다” 지금이 그가 사다리에서 내려와야 할 시점이란 이야기다.

이상문 전 의장은 2006년 삼호·무거지역 기초의원으로 남구의회에 입성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전반기 의장을 역임했다. 당시 의회구도는 새누리당 (당시 한나라당)8명, 진보정당 6명이었다. 하지만 의장을 빼면 실제 여당의원은 7명. 그러다보니 원(院)구성을 두고 여야가 격돌했다. 원구성 마감일을 훨씬 넘겨 겨우 의회가 가동됐다. 그때를 돌이켜 보며 그는 “기초의회는 정치적 이념이 개입되면 안 됩니다. 또 기초의원들은 자리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여당의원들이 상임위 직책 때문에 야당과 협조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고 했다. 상임위원장 자리 때문에 여당의원들끼리 불협화음을 냈던 사실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야기가 기초의회 폐지와 정당공천제 쪽으로 흘러가자 이 전 의장은 ‘조건부 구의회 폐지’를 주장했다. “기초의회를 존속시키려면 소선거구제로 가야 합니다. 현행 중선거제는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지역에 몰입하는 건 불가능 하거든요” 중선거제는 한 지역구에서 2~3명의 의원을 선출한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출신지역이 아닌 다른 곳까지 신경을 써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 10명씩만 만나도 임기 4년 동안 1만4천명 정도 밖에 못 봅니다. 그것도 만나는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지역 주민만 약 3만~4만명인데 어떻게 모두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선거 때는 자주 보이더니 선거만 끝나면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는 중선구제의 다른 폐해도 지적했다. “중선거구제이기 때문에 같은 당에서 2~3명을 공천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일하던 사람이 선거 때만 되면 갈라져 시기, 반목하게 됩니다.”

정당공천제에 대해선 대부분의 지방의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폐지를 주장했다. 기초의원들은 ‘정치인’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당공천제 때문에 기초의회가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초의원은 그야말로 지역주민의 대변자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정당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뒤에 남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감동 주는 구의원이 돼라. 주민들과 땀을 같이 흘릴 수 있는 의정활동을 하라”고 한다. 각종행사에 초대받고 기초단체장과 함께 움직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것 또한 정당공천제의 폐단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기초의원 스스로 정당공천제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의정활동 8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냐고 묻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의원들의 열악한 상황을 잘 모릅니다. 해외 연수비용으로 일년에 180만원이 책정돼 있어요. 유럽 연수의 경우 500만원 정도 소요됩니다. 나머지는 모두 의원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주민들이 시민혈세로 연수 간다며 비난을 퍼 붓습니다.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고 안타깝죠”라고 했다. 지역주민들은 기초의원이 마치 만능인간쯤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고도 했다. 불법 주정차 딱지를 들고와 과태료를 물지 않도록 해달라고 한단다. 인허가가 불가능한 건(件)을 들고와 무조건 해달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단다.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도 통 수용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란 사실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는 의장시절을 돌이켜 보며 의회 인사권 문제를 거론했다. 의회 전문위원이나 직원들은 한 곳에 머물러 있어야 전문성을 가질 수 있다며 인사권을 집행부가 가지고 있는데 어느 누가 의원들을 제대로 보필하겠느냐고 했다. 또 “집행부를 견제하려면 그들로부터 각종 정보를 입수해야 하는데 단체장이 목줄을 쥐고 있으니 그들이 의회를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가 해결돼야 지방자치가 제대로 이뤄집니다”고 했다. 그 동안 의회 인사권 확보를 국회에 여러 번 건의했지만 지금까지 무반응이라고 한다.

이 전 의장은 의정활동기간 동안 삼호동 ‘궁거랑 축제’를 반석 위에 올려놨다. 지난달 초에 시행된 올해 축제에는 3만명 이상이 다녀갔다. 축제기간을 전후해 2~3일 동안은 주변 음식점들에 자리가 없을 정도다. ‘궁그랑’이란 이름도 그가 지었다. “도랑은 주로 논밭에 있는 거 아닙니까. 생활권 주변에 있기 때문에 ‘그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랑 주변에서만 5대째 살고 있다. 현재 그의 형제자매(4남1녀)들도 모두 삼호동, 무거동에 산다. “내 눈에서 5분 거리 보이는 곳에 모두 살라”는 아버지의 엄명을 받들어서다. 그도 다시 형제자매 곁으로 돌아간다. 그 동안 의정활동을 하느라 친구들까지 멀어졌는데 이제 다시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어떤 친구는 의원시켜 보내는 바람에 친구하나 잃었다며 의원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한단다. 그렇게 말하지만 그의 마음이 왜 허전하지 않겠는가. 그는 원래 ‘농협 맨’이다. 2010년 겸직 금지법에 따라 사직 했을 뿐 중앙농협 이사를 3선 했을 정도다. 이 전 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정든 곳으로 다시 돌아 갈 것’이라고 했다. 농협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듯하다.

글·사진=정종식·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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