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元老
원로 元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2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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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울산시장 후보 경선 열기가 아스팔트라도 녹일 듯하던 지난 8일 오후 2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는 기자회견을 자청한 ‘자칭 원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대학교수를 지낸 한 사람이 “침묵을 하는 자는 영원히 죽은 자”라고 운을 뗀 뒤 변영로 시인의 ‘논개’를 입에 올렸다.

“저는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더 강하다’는 논개의 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분노는 우리 조상들, 우리 애국자들이 많이 느꼈던 것이고 그 논개조차도 18세에 자기 목숨을 던질 만큼 이 사회를 위해서 이 국가를 위해서 했는데, 저는 70이 다 돼 가도록 변변찮은(→변변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지혜와 용기를 다해서 이런 문제를 형으로서 바로잡고 형으로서 우리 울산의 공복인 OOO 의원에게 원로로서 아주 정중하게 이야기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교수 출신답게 달변인 그는 아무개 시장 후보와 자신이 평소에 호형호제하는 사이였고 그 후보를 위한 모임의 우두머리도 지낸 적이 있노라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관계인데도 느닷없이 이미 세간에 다 알려진 4가지 의혹을 새삼 끄집어내는 이유는 뭘까? ‘안티’ 구호를 들고 나오다니 갑자기 사이라도 틀어졌나?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자회견장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정의로운 사회 실현을 위한 울산시민 원로회의 기자회견’이란 큼직한 글씨가 취재진의 눈길을 끌었다. 영문 모르는 보통시민이라면 성급하게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 원로 부재 시대에 드디어 정의로운 사회 실현에 앞장설 원로가 한 분이라도 등장하는구나!”

‘전직 대학교수님’의 말대로 하자면 원로는 바로 전직 교수 자신이 된다. 자신을 원로로 자처하다니! 그에 대한 반박 모드는 당장 그 다음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원로회의’ 참가자 명단에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름이 무단으로 올라갔다는 사람들의 연쇄반발이 꼬리를 물었다.

‘자칭 원로’에 의해 명예가 실추됐을 수도 있는 OOO 의원이 약 한 시간 뒤 대변인 논평을 통해 반응을 보였다. “오늘 소위 ‘울산시민 원로회의’라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의 기자회견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원로’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그런 이름으로 명의가 도용된 사람이 상당하다는 것은 이 단체가 매우 급조됐고, 의도가 다분한 유령단체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회견에서 거론한 사안들은 야당과 특정세력의 선동에 의해 수없이 반복됐던 ‘아니면 말고식 흠집 내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곁들였다. “지역사회의 연장자로서 최소한의 품격만은 지켜주시기 바란다”고 점잖은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로(元老)의 참뜻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 혹은 ‘예전에, 나이나 벼슬, 덕망이 높은 벼슬아치를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원로 교수, 방송계의 원로, 문단의 원로, 원로 재상, 조계종 원로회의 하는 식으로 두루 쓰인다.

매우 유감인 것은 이 원로라는 용어의 원조가 일본 제국에서 정부의 최고 수뇌에 있었던 중신들을 가리키는 ‘겐로(元老, げんろう)’에서 비롯됐고 이 또한 메이지 유신에서 공을 세운 인물 ‘원훈(元勳)’에서 유래됐다는 통설 때문이다.

여하간 자칭 원로의 출현 이후 기다려지는 것은 참된 의미의 품격 있는 원로일 것이다. 울산 바닥에서 원로를 찾기란 ‘나무에 올라 고기를 얻으려는’ 허튼 짓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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