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안전부실 공화국
총체적 안전부실 공화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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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근대화와 성장이라는 말 등에 앉아 미친 듯 달려왔다. ‘한강의 기적’이라 우쭐대며 마치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오로지 앞으로만 치달아 왔다. 때로 성장의 그늘 운운 하며 뒤 돌아보는 것도 잠시일 뿐, 앞으로만 달리는 괴물이 돼 버렸다.

이번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건도 한 방향으로만 치달아온 ‘성장괴물’이 빚어낸 참사 중 하나이다. 수많은 비난과 회한, 비탄의 소리가 난무했지만 남영호 사건, 서해 페리호 침몰 사건 등은 이미 먼 옛날의 전설이 돼 버렸다. 입만 열면 동방예의지국, 삼강오륜, 세속오계를 따지던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산업화가 만들어 낸 금전만능의 천민자본주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업화를 진행하며 뭉개버린 윤리, 도덕교육의 홀대이다. 세상이 다 굶주리고 피폐해도 나와 내 혈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런 생각이 골수에 박혀버린 사람들이 “혼자만 잘살면 뭔 재미냐”고 묻는 이들을 바보라 조롱하는 사회에 어떻게 정의와 희생정신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부정부패, 악덕기업의 뿌리가 되살아나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보라. 정치권력에 기생해 성장한 청해진 해운과 같은 악의 뿌리가 얼마나 모질고 질긴가를 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쌓아 올린 악덕기업과 기업주의 거대한 탑이 일순간 무너지면 마치 병든 코끼리가 넘어질 때 수많은 개미들이 떼죽음 당하는 것처럼 애꿎은 약자들만 당하는 현실을 보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마치 지금에야 아는 것처럼 호들갑 떠는 돈과 권력이 결탁한 마피아 집단이 어디 해양수산 분야뿐인가. 중앙부처 ‘퇴직 마피아’는 마피아대로, 지방 퇴직 공직자 마피아 집단은 지방대로, 이미 도를 넘어 선지 오래다. 이런 사실을 이 나라 역대 최고 권력자들이 모를리 없었다. 알고도 눈 가리고 아웅 했다고 봐야 한다.

산업사회에서 대형사고 발생은 상존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각자의 직무를 지키고 약한 동료를 위해 솔선 희생하는 것은 순간적인 판단만으론 안 된다. 직업윤리와 희생정신은 학교와 사회교육을 통해 공민의식과 인류애로 성장하지 않으면 결코 발휘될 수 없다. 위급한 순간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이 결여됐다는 것은 도덕과 윤리교육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믿은 착한 영혼들의 최후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한 조각 마지막 신뢰마저 잃었다. 그리고 기성의 제도와 세대는 그들을 기만했다. 다음 세대들의 신뢰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이미 위기의 사회이다. 뼈를 깎는 회한과 반성이 필요하다.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도 샘을 파고 꽃을 피워야 한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따위의 허사는 이제 버리자. 무자비한 대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제국화 된 마피아와는 전쟁을 치르더라도 뿌리까지 파내야 한다. 개혁은 희생에 대한 고귀한 보답이 돼야 한다. 전문가임을 빙자한 퇴직공직자들의 ‘연장밥통’과 특정 분야로 특화된 저들끼리의 ‘밀당 고리’를 원초적으로 잘라야 한다. 우리는 저 푸른 영혼들의 희생에 국가개조의 정신으로 개혁하고 혁신해 국민안전과 행복으로 그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과거의 희생을 현재가 미래를 위한 개혁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치욕일 뿐이다.

<박기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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