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2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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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1박에 82달러), 인도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6천150달러), 멸종위기의 검은 코뿔소를 사냥할 권리(15만달러), 이마 등 신체 일부를 임대하여 상업용 광고를 게재(777달러), 제약회사의 약물 안전성 실험대상(7천500달러), 로비스트를 대신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밤새 줄서기(시간당 15~20달러), 학력 부진 학생의 독서 권장(1권당 2달러).

하버드대 마이클 샌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저서에서 지난 30년 동안 시장 및 시장가치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서 거의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하고 있다. 또 “냉전 이후 시장만큼 인간에게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준 메커니즘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가치가 모든 정책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을 넘어 비시장 영역인 사랑, 우정, 명예, 성, 삶, 죽음 등 도덕적 가치까지 침범하고 있다”며 그는 시장이 도덕적 가치까지 거래 대상이 되는 사회를 만들지 않기를 독자들에게 간절히 주문하고 있다.

6·4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두가지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행위다. 과거의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처럼 드러내놓고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행위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돈 봉투를 건네는 사례가 종종 적발되곤 한다.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행위는 대의민주주의제에서 그 정당성을 보장받지 못해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는 금품선거를 차단하기 위해 금품 등을 받을 경우, 최대 50배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한편 선거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선거공영제를 실시하는 등 공정선거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돈으로 투표율을 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선거 투표율은 80년대만 해도 70%를 훌쩍 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투표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지난 2008년 총선에서는 46.1%라는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시장경제가 글로벌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면서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가 번영을 누릴수록 투표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주요 OECD국가는 의무투표제를 시행하거나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호주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20~50달러의 벌금까지 부과한다. 브라질의 경우 최저임금의 3~ 10% 벌금을 부과할 뿐 아니라 공직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18대 총선에서 투표율을 올리고자 투표할 경우 일정기간 동안 국공립 박물관 등의 입장료를 할인해 준 사례가 있었다.

돈으로 투표를 독려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시민의 대표자를 뽑는 신성한 권리가 경제적 수단에 채찍질 당하고 있다. 반세기 전 3·15 부정선거를 국민의 피땀으로 항거한 경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당성을 부여할 만한 투표율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일부에서는 투표 안 할 자유도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의 낮은 투표율이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다른 선진국처럼 강제적(Negative)방식을 도입해야할 지도 모른다.

마이클 샌들은 “도덕적 가치는 시장가치가 아닌 그것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표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을 몸소 느끼고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실현하는 행위인 것이다. 더이상 시장, 즉 돈으로 투표의 가치를 퇴색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우 중구선관위 홍보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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