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이 헷갈리는 세상
진실과 거짓이 헷갈리는 세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2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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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침몰사고 이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됐다. 그 과정이 그렇고 사고 이후 모습이 그렇다. 이것이 우리의 참 모습이었는지 되 묻고 싶을 정도다.

칠흑 같은 바다 속으로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내 안내 방송은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라” “선실이 더 안전하다”고 했다. 그랬으니 규칙대로 하는 것이 정도(正道)인 걸로 배운 학생들이 배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배운 대로 따르다 불행을 당했다. 어찌 이런 세상이 있을 수 있는가. 정도(正道)를 지키면 목숨을 잃고 규칙을 어기면 살아남는 세상이라면 진실과 거짓의 분별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사고가 난 뒤 상황도 마찬가지다. 전체 탑승 인원과 구출인원 숫자가 수시로 바뀌었다. 가족들은 구출자 숫자에 따라 안도감을 갖는다. 많으면 기대가 크고 적으면 좌절감에 빠진다. 그런데 그 숫자가 들쭉날쭉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누군가가 ‘학생들이 전부 구출됐다’ 고 학부모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거짓임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살아 있다’고 페이스 북이나 카카오톡으로 말한 사람들 역시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 뿐만 아니다. 실종자와 구조자가 뒤 바뀌었고, 승선 명단에도 없는 사망자가 나왔다. 잠수요원이 선체진입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은 뒤 한 시간도 안돼 이를 번복하는 등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을 찢는 일이 몇 번이나 발생했다. 얼마나 그들의 가슴을 무너뜨려야 하는 것인가?

기자들의 경쟁적인 언론취재도 유가족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울고 있는 학부모의 얼굴 가까이에서 함부로 터지는 플래시, 가눌 수 없을 만큼 슬픈 가슴에 마이크를 들이대고 질문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취재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언론의 입장을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역시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지금 구조되지 못한 승객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혼란한 와중에 함부로 터지는 플래시나 인터뷰가 아니다. 현 상황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구조 상황과 향후 구조대책 그리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다. 언론이 매일 반복하고 있는 행태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슴을 다시 한 번 짓뭉개는 일일 뿐이다.

배가 한순간 기울어져 버렸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눈물이 차오른다. 실시간 생중계를 보면서 그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바람을 나누고 싶지만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마음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피해자들의 아픔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그 누구도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기적이 있다면, 지금 일어나야 한다. 손톱만큼의 기적이라도 바라기에 감히 명복을 빌 수도 없다. 더 이상 사망자가 늘어나지 않고, 나머지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것을 기적이 아닌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 “여기 생존자가 있다”고 외쳐주길 고대한다. 희망의 꽃봉오리가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기도한다.

<박진호 팔각회 울산시지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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