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날, 법의 날, 돈의 날
과학의 날, 법의 날, 돈의 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2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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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다. 21년 전에도 봤고 4년 전에도 똑같은 모습을 봤다.

292명이 숨진 1993년 서해 페리호 사고, 46명의 장병이 순직한 2010년 천안함 침몰과 302명이 사망·실종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의 구조광경이 똑같다. 조직은 우왕좌왕, 대책은 갈팡질팡, 구조는 속수무책이다. 구조대책본부가 아니라 시신수습본부 같다. 하늘만 쳐다보고 기다리는 천수답(天水畓)식 구조행태는 2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지난 21일은 과학의 날이었다. 오는 25일은 법의 날이고 특정된 날이 아닌 모든 날은 돈의 날이다. 돈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세상이다. 세월호 참사와 과학, 법, 돈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해난구조에 첨단과학과 첨단장비가 빠져있다.

기술이나 장비가 개발돼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보가 부족하고 구매를 하지 않아서다. 최신기술을 적용한 구조장비가 웬만한 것은 세계에 수소문하면 다 있다. 걸핏하면 사고수습 막바지에 미국에서 장비를 빌려 쓴다. 예삿일이 아니다. 꼭 필요는 하지만 개발돼 있지 않은 것이 있다면 민간에 위탁해 개발을 하면 된다. 정보와 정부의지의 문제다.
일본의 해난사고 구조율은 96%에 이른다. 해상보안청의 특수구난대와 전국 8개 거점에 헬기를 보유하고 24시간 대기체제로 운영하는 기동구난사 등 구조시스템도 비교적 완벽하지만 첨단기술 장비를 이용한 과학적인 초기대응 체제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악천후를 상정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구조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첨단 방재 매뉴얼도 높은 인명구조율 유지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법규 철폐에 현 정부가 열을 올리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이번 사고도 규제 완화와 직접 관계가 있다. MB정부는 기업비용 절감 취지로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여객선 선령 제한을 종래 20년에서 30년으로 대폭 완화했다. 일본에서 18년간 운항하고 퇴역한 고물배인 세월호가 2012년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 규제완화 때문이다. 법 개정 하나로 낡은 연안 여객선이 갈수록 늘고 있고 사고 위험은 그 만큼 더 높아지고 있다. 무분별한 규제완화의 무서운 결과다.
또 해사안전법 등 우리나라 해운 관련법들이 이용객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철저하게 기업의 사익에 충실한 후진국형 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많다. 관례로 되어있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선장의 최후적 이선(離船)을 법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는데도 세월호 선장은 지키지 않았다. 한국 구조과학 수준의 후진성과 함께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

법과 과학은 돈에게 샅바를 빼앗긴 지 오래다.

경제력이 없으면 과학은 그림 속 떡이다. 기초적인 인명안전 사항도 지키지 않는 선사 사주에게 과학기술을 갖추라고 따지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최신 과학구조장비도 없다. 20년 전과 똑같다.
법은 대기업가, 자산가, 유력자의 로비가 한 번 지나가면 쑥밭이 된다. 천안함 백서에 개선사항을 많이 담고 있었지만 입법으로 이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법규 미비를 질타하는 야단법석은 사고 날 때 그 때 뿐이다.

이번 사태에 관련된 비(非)과학과 불법행위는 종범이다. 주범은 초법자가 돼 한국사회를 주무르는 돈이고 돈독(毒)이 올라있는 우리들이다.

5년이나 10년 뒤 행여 대형 해난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기를 희망한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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