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신 ‘카이로스’
기회의 신 ‘카이로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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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그리스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두개의 단어가 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크로노스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의 개념이다. 시침의 움직임과 함께 역사가 쌓이는 연대기적인 시간이고 천문학적으로는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즉 선택과 결정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다. 크로노스에서 따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획득하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크로노스가 물리적, 계량적인 메탈워치타임이라고 한다면 카이로스는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컨셔스니스 타임’, 즉 의식의 시간이다. 같은 시기라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동일한 시간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어떤 이의 10년 세월이 다른 이에겐 20년의 세월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크로노스는 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 신 가운데 하나이다. 카이로스도 제우스(Zeus)신의 아들이며 특별히 기회의 신(神)으로 불리운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카이로스’의 조각상을 보면, 앞머리는 장발로 숱이 무성하나 뒷머리는 민머리이며, 발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그리고 손에는 저울과 칼이 들려있다. 조각상 아래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앞머리가 무성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긴 것이고, 뒷머리가 민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앞에 있을 때는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며,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Oppor tunity)’이다.”

‘기회’는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무성한 머리털로 가려져 있지만, 혜안으로 알아본 사람은 그 무성함으로 쉽게 붙잡도록 배려한다. 그러나 기회의 뒷머리는 민머리이기 때문에 일단 놓치면 다시 붙잡기란 쉽지 않다. 발뒤꿈치에 달린 날개로 바람처럼 도망가기까지 한다. 그러니 우리가 기회를 보았다면 기회의 신이 들고 있는 저울처럼 정확히 판단하고, 그가 들고 있는 칼처럼 빠르게 결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의 시간이던 다시 돌아오지 않음으로 해서 소중한 것이다. 잃었던 건강도 섭생을 잘하면 회복할 수가 있고, 금전으로 파산해도 회생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매순간이 심판이고 여유부릴 틈을 주지 않는다. 삶의 대부분을 크로노스에 실어놓고 무방비 상태로 흘러 왔던 것은 아마도 젊음에 대한 과신으로 시간이 넉넉할 거라 착각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시간의 흐름이 항간의 우스갯 소리 처럼 시속 50㎞를 웃도는 게 체감되니, 마침내 기회의 신이 날개달린 발로 바람처럼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메일로 도착한 글귀를 다시 들춰 보았다.

‘우리는 완벽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삶을 헛되이 보내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이란, 완벽한 여인을 기다리다가 사랑이 모두 지나갔음을 뒤늦게 깨닫는 머리 희끗한 노총각일 수도 있고, 항상 창업할 시기만 찾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야심 많은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여기에 발신자가 덧붙여 당부한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완벽한 기회는 없습니다. 완전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 완벽한 기회, 완전한 순간만을 기다린다면 평생 기다리다 끝이 납니다. 용기, 모험심, 결단력이 새로운 변화, 새로운 기회의 주인이 되게 합니다.’

<오나경 서양화가·약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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