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출판의 선각자 우석 김기오
교육문화 출판의 선각자 우석 김기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1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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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 김기오(1900?1955)는 울주군 언양 출신이다. 그는 젊은 시절 3?1독립운동에 참가하면서 독립심과 애국심을 길렀다. 그가 실행으로 옮긴 것이 소년소녀연맹 조직과 언양 청년회·신간회 및 양산청년회 활동이다. 그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하면서 기자로도 활동했다. 또 1926년 울산기자단을 창립해 언론활동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이런 일제 저항운동으로 그는 고초와 탄압을 받아 불구가 됐다. 재산도 다 날렸다. 그래서 그가 벼랑 끝에서 택한 것이 인쇄업이었다.

시대적 격랑과 고난을 겪으면서 그가 투신한 인쇄 출판업은 교육과 문화 사업으로 애국과 보국의 업적을 이뤘다. 고학당과 문화당에 이어 대한교과서 창립은 우리나라 교과서 발행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해방 이후 교육 받은 사람치고 대한교과서에서 발행한 교과서로 공부하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교과서 출판 사업으로 성공한 우석은 그 이익을 교육 문화 사업에 투자했다. 그 대표적 사업이 ‘현대문학’ 창간이다.

‘현대문학’은 우리나라 최장수 문학잡지이자 현대문학사이다. 우석의 문화 사업에 대한 투자와 결단이 없었으면 ‘현대문학’은 탄생하지 못했다. 또 ‘현대문학’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문학과 문화는 불모의 시대를 맞았을 것이다. 우석은 현대문학사의 초대 사장 겸 발행인이었다. 조연현이 주간, 오영수는 편집장을 맡았다. 그러므로 오영수를 말할 때 ‘현대문학’ 창간인인 우석의 업적을 간과해선 안 된다. 난계 오영수와 관련해 말하자면 ‘현대문학’ 창간은 오영수에게 문학적 도약의 계기를 제공했다. 지방 무명작가였던 오영수가 우석을 만나고, 우석의 문화적 구상과 인생관에서 비롯된 ‘현대문학’ 창간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그가 문학인의 명성을 제대로 쌓았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우석 김기오가 다른 사업가와 남다른 점은 실제적 이익과는 거리가 먼 문화사업에 투자를 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문학과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후원하거나 투자하는 사업가는 흔치 않다. 이런 면에서 우석은 사업철학과 인생관이 뚜렷한 사업가다.

그의 청년 시절 일제저항운동과 그로 인한 수난은 그가 뒷날 인쇄·출판 사업에 뛰어들게 한 정신적 배경이 됐다. 또 우석은 사업의 기본을 교육·계몽도서 개발에 치중함으로써 인쇄·출판인으로서의 사회적 기여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 뿐만 아니다. 우석은 우리나라 초창기 출판,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공익적 명분을 위해 이 사업들을 일궈냈다. 그는 또 문학잡지가 없었던 시기에 순수 문예지 ‘현대문학’을 창간함으로써 우리 문단에 새로운 발표 무대를 제공하고자 했다. 우석은 여러 교육 사업에 실질적인 후원자로 나서 미래인재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교육 출판·문화의 선각자인 우석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저평가는 공적이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홀대를 뜻한다. 인생 고난과 덧없음 속에서 우석이 보여준 선행 사례는 우리에게 희망과 극복의 의지를 심어준다. 또한 우리에게 가치 있는 인생을 설정하게끔 한다. 우석은 ‘평범 속에서 비범함’, ‘역경 속에서 희망’을 창출한 인물이다. 사회와 민족에 대한 그의 헌신은 대대로 전해줘도 부끄럽지 않은, 오히려 자긍심을 갖게 하는 수범(秀凡) 사례이다.

우석은 사업가로서 사적 이익보다는 공적 이익, 개인 영달보다는 국가, 교육과 문화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그의 행적과 업적은 문화적 가치와 재산이 되기에 충분하다. 울산시와 울주군은 이런 인물을 재조명해 ‘창조 문화’를 이룰 수 있는 기제로 삼았으면 한다.

<문 영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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