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드레스덴선언’ 이후의 한반도
박 대통령 ‘드레스덴선언’ 이후의 한반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0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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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세계 핵 안보정상회담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지난달 28일, 구 동독지역인 작센 주 드레스덴 공과대학에서 한반도 통일 프로세스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혔다. 박대통령은 지난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화두를 던진바 있다. 비록 드레스덴공과대학 교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기는 하지만 분단에서 통일을 이룬 독일 땅에서 그런 통일구상을 내 놨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사실상 이번 선언은 세계를 향해 자신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원칙과 정책기조를 밝히는 ‘대통령의 통일선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언론과 조야는 이를 박근혜의 ‘드레스덴선언’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엄격한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적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세 가지 구상을 북한에 제안 했다. 그리고 이 제안을 실현키 위한 구체적 방안도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논객들은 최근 북한의 동향을 보고 “괜히 북을 자극해 한반도에 불길한 봄을 만들었다”며 눈을 흘기고 있다.

드레스덴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군수산업 중심지라는 이유로 연합군의 집중포화를 맞아 전 도시가 참혹하게 파괴됐다. 그래서 드레스덴은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도시가 됐다. 드레스덴 희생의 대가로 히틀러가 운명에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이번 ‘드레스덴선언’의 의미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의미는 그 후 드레스덴이 거듭나는 과정에 있다. 드레스덴의 상징격인 성모교회 역시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없어 90%가 파괴됐다. 그러나 1989년 독일 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헬무트 콜 수상은 이 성모교회에서 전쟁의 참극을 되새기며 반전과 평화의 꿈을 역설했다. 이것이 시작이 돼 드레스덴시를 반전과 평화의 상징으로 복원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시민들은 폐허 더미 벽돌 하나하나에 일일이 번호를 매겨가며 꿈을 세워갔고, 세계 20개국이 성금을 지원해 2004년 마침내 도시를 옛 모습으로 되돌려놨다. 박대통령은 연설에서 “독일 국민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번영, 평화를 이뤄 냈듯이 이제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독일 통일이 역사의 필연이듯이 한국통일도 역사적 필연이라고 확신 한다”며 한반도의 평화적 자유통일의 의지를 천명했다.

통일은 상대가 있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큰 변수로 작용할게 틀림없다. 그러나 통일의 주역은 남북이며 목적은 남북한 당국자들의 삶이 아니라 주민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권리와 삶의 행복이다. 통일의 힘은 남북 주민의 의지와 열망에서 나온다. 하지만 드레스덴 선언 후 열흘도 못돼 한반도의 봄은 이상기류를 타고 있다. 드레스덴 선언 직후 대통령 실명까지 거론하며 폄하비난을 쏟아내더니 북은 끝내 훈련을 빙자해 서해 NLL 근접 해역에서 수백발의 포격을 가했다.

북한당국의 공식창구격인 조선중앙통신의 비난 수위는 선언에 대해 공식거부로 갈 조짐을 보인다. 내미는 손을 뿌리치는 것은 아직 해동이 덜된 동토의 왕국에 봄볕이 덜 들어서일 것이다. 아직도 한반도는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 혹은 폭염, 폭격으로 달아오르는 염천의 여름뿐이다. 냉탕 열탕을 반복하는 한반도에 잔잔하게 물결치고 꽃피고 새 우는 따사로운 봄은 언제 오려나.

<박기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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