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무의미 사이
의미와 무의미 사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2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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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하는 말을 버릇처럼 입에 달고 지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깨닫지도 못 한 채 쓴, 그야말로 버릇처럼 써 온 말이었기에 누군가의 지적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마음 깊은 곳에 ‘의미’에 대한 의미를 무척이나 중요시했다는 말이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나뭇가지를 스쳐가는 바람결에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어느 시인이 읊조린 적이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웃는 ‘방긋 웃음’ 속에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길가에 주저앉아 있는 잡초에도 계절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돌아보면 곳곳에서, 시시각각 ‘의미’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것도 그것이 자신에게 의미로 작용해야만 그 의미가 비로소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라는 단어가 무의식 속에서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작용을 했던 것일까.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배신감을 많이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적어서였던 것일까.

새삼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은 분명 대상이 있다는 뜻인데 철부지 나이에 무슨 큰 직책을 가졌을리 만무하고, 남다른 세상 풍파를 겪은 것도 아니면서 그 무의미라는 말을 왜 자꾸 입에 담았던 것일까.

우스운 말이지만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배반을 느낄 때가 있다. 사시사철 변하는 계절에게도 그렇고,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에게서도 그런 것을 느끼곤 한다.

하물며 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주변 사람들과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살과 피를 나눈 부모형제,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생명들에 대해서 간간이 느껴야 하는 그 정체모를 괴리감을 그냥 배신이라고 이름 짓고 가만히 생각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늘 ‘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이 만물을 변화시키고 덧없는 것으로 만든다. 사람의 몸도 마음도 분명 지난날의 그 사람은 아니리라. 덧없이 스쳐가는 숱한 사건과 사람들. 돌아보면 그야말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들과 사연들로 점철돼 있다.

안타깝게도 정작 해야 할 일과 했어야만 할 일들을 다 놓쳐버리고 허울 좋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자신을 본다. 그 중에서도 사람과의 관계의 허망함이 가장 마음을 쓰리게 한다.

10년, 20년 지기도 돌아서는 것은 한 순간이지 않았던가. 등을 돌린다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감정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감정이라는 것을 잘 다스리는 일은 결국 관계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아무 일 없이 지난다는 것은 감정 조절을 정말 잘 한다는 뜻인데, 그런 면에서 따지면 필자는 늘 실패자였다. 잘 지내다가도 한 번 봇물이 터지면 감정을 제대로 가누질 못한다.

뭔가를 참는다는 일은 그 사람의 인격과 직결된다고 볼 수도 있다. 때문에 참지 못하고 감정을 발산한다는 것은 결국 내 인격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참고 싶지도, 참을 필요성도 못 느낄 때, 문제는 발생하고 만다. 이럴 때 필자는 ‘의미’와 ‘배신’과 ‘인내’의 경계선에서 갈팡질팡 한다. 오늘도 딸아이와 한 판 감정 겨루기를 했다. 못난 어미다.

<전해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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