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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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누군가와 통화를 할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잘 지냈어요? 뭐 재미난 일 없었어요?”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별일이 있겠느냐, 재미난 일 좀 있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식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시간 앞에 왜 사람들은 재미난 일도 하나 없이 무료하고 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걸까. 막상 매일 매일을 너무 긴장해 하거나 황홀하게 보낸다면 아마도 너무 피곤하거나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져 건강을 해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대답에서는 그런 기분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필자 역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겨울을 보내고 이제 겨우 봄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다. 지난 겨울 종강(終講)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까지만 해도 여행을 가거나 못 봤던 영화를 보거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등의 계획이 산더미였는데 겨우 한 달이 지나자 삶 자체가 무미건조해지고 작업실에 놓여 진 내 자신은 춥고 쓸쓸했으며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그래서 겨우 내내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자존감은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만 커져 갔다. 그리고 결국엔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SNS에 올라온 누군가의 셀카를 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참 자신을 사랑하는 듯 했다.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거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 나이에 저런 깜찍한(하다고 믿는) 표정과 제스처를 지을 수 없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찰나, 필자는 스스로를 가두는 한 지점을 발견했다. 바로 나이였다. 어느 예능에서 할머니들이 어깨춤을 추며 흥얼거렸던 ‘내 나이가 어~때~서~’하는 바로 그 나이 말이다.

열아홉에는 풋풋함이 있었고 스물아홉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다가 서른아홉이 됐다. 그리고 마흔아홉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렇게 즐거운 기분이 아닐 거라 단정해 버린 바로 그 지점에 서서 다시 의문을 가진다.

인생을 얼마나 재미있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나이와는 무관하며 자기 스스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느냐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필자의 머리를 스친다.

최근 종방한 JTBC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전체를 주말 내내 본 적이 있다. 40대를 바라보는 이혼녀, 미혼녀, 전업주부 세 여자의 이야기인데 극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결국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과정들이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었고 그 물음은 타인에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물음이었다.

드라마의 OST 꽃잠프로젝트의 ‘Every day’라는 곡을 따라 불러본다.

‘매력에 흠뻑 빠질 때, 소중한 가치 느낄 때, 하나둘씩 사랑에 빠져든다. 매일매일 조금 더 조금씩. 끝이 없는 하루를 건너간다. 참 많은 사랑이 삐걱거리는 이 곳.’

그렇다. 참 많은 사랑이 삐걱거리는 이곳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사랑할 수 있고 즐거운 인생과 멋진 하루를 누릴 수 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하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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