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 속 불편한 진실
출판기념회 속 불편한 진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0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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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되면 관례처럼 열리는 출판기념회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쟁하듯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출판기념회 수는 어림잡아 수백 건에 이른다. 그러나 모범 사례는 몇 손가락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필자는 시인이다. 햇수로 등단 16년째이다. 정말 열심히 글을 썼다. 죽기 살기로 썼다. 첫 시집을 엮는데 만 10년이 걸렸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드물게는 등단 이후 곧바로 작품집을 출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오륙년은 걸려야 비로소 한 편의 작품집을 펴낼 수 있다. 소설, 동화, 수필 등 산문집은 더욱 많은 창작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다고 몇 권의 작품집을 냈느냐와 작가의 작품 수준과는 별개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요는 한 권의 작품집을 출간하기 까지 쏟아 붓는 열정과 시간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출간하는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자서전 형태로 자신이 성장과정과 업적 나열, 나름의 비전 제시가 주 골자이다. 어떤 책은 자서전인지 보고서인지 화보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대필 작가의 손을 거친 것은 좀 낫다. 보좌관이나 비서진의 손을 빌려 만든 책은 질과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목적에 의해 급조됐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흔히 ‘정치자금 창구’로 불린다. 때문에 국민적 측면에서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수익금은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지정된 함에 책값으로 넣어지는 흰 봉투 속 액수는 알 수 없다. 아마 책에 명시된 정가만 넣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한 출판비용을 제외하더라도 행사에 드는 비용도 엄청나다. 장소 임대료, 대형 현수막, 영상물, 홍보비, 진행비, 다과비 등은 작게는 수백 만 원에서 수천 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비용을 들이더라도 수익이 남는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성황을 이루는 것은 2004년에 개정된 정치자금법 때문이다. 정치자금의 조달과 수입 지출이 제도적으로 투명해졌고,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졌던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책을 공짜로 나누어 주는 것은 선거법 위법이지만, 축하금을 내는 것은 현행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입지와 세과시를 위해 조직을 이용해 주민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중앙당 인맥까지 대거 참석시켜, 지방을 중앙정치권의 선동장으로 몰고 간다. 이것이 정치인 출판기념회의 현실이다.

지난 27일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의 창구’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감안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칙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는 황우여 대표의 발표는 반길 일이지만, 준칙은 법과는 달리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준칙에는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를 임기 중 2회로 제한하며, 국정감사, 정기국회, 예산국회, 선거 임박 시점에는 행사를 개최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내용과 함께 참석자 동원을 500명 선에서 제한하고 화환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오죽했으면 당 대표가 개인의 출판회까지 언급했을까 싶다. 지역 정가에서도 이 준칙만이라도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종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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