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은 야속하다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은 야속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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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화살처럼 빠르든 혹은 구불구불 휘어진 강물처럼 느리든 시간은 흐른다.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은 늘 야속하기만 하다.

이근수 할아버지는 지난 19일 66년을 기다려 온 이산가족 상봉을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으로 포기했다. “가지 못하겠다”고 말하려 수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누르던 주름진 손은 떨렸을 것이다.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된 이 할아버지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등에 업혀 있던 여동생의 체취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꽈배기를 좋아하던 그 옛날 어린 동생을 생각하며 40여년 전 처음 맞춘 자신의 첫 양복을 가져가겠노라 했다. ‘향자’라는 여동생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추석 연휴 전 다시 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군 속후면 서호리의 위성사진을 선물했다. 고맙다며 마당까지 맨발로 나와 배웅하던 할아버지였다.

이산가족 상봉이 갑작스럽게 연기됐을 때 실망했을 이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난달 이산가족 상봉 재개 소식에도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지 않았었다. 많이 야윈 모습이었다. 잠도 못 자고 입맛도 없다고 했다.

결국 이 할아버지는 하루 전 상봉을 포기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다고 했다. 그저 한숨 뿐이었다. 상봉이 예정대로 지난해 이뤄졌다면 괜찮았을까. 하루만 더 일찍 만났다면 갈 수 있었을까.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것은 이 할아버지만이 아니다.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로 희생된 한 학생의 친구는 장례식장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얼굴 마주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더 잘 챙겨줬어야 했는데…”라며 미안해했다. 덤덤하게 다른 친구들을 챙기던 그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지난 다섯 달 동안 북녘 가는 날을 기다렸던 짐은 할아버지의 작은 방, 그 자리에 남았다. 풋풋한 대학생활을 꿈꾸던 꽃다운 학생은 졸업앨범에서 해맑게 웃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어느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주성미 취재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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