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성당에서
옥수동 성당에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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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마리아의 혼삿날/ 옥수동 성당,/ 스며든 봄빛을 신비로 빚어내는/ 스테인드글라스 그 가까이에/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엄숙을 가장한 내가/ 고즈넉이 앉아 있을 때/ 환청처럼 떠돌던 세 번 기도의 의미// 한 번 기도의 의미와/ 두 번 기도의 의미를/ 곱씹지 않으며 살아 온 내가/ 성당 계단을 헤아리며 내려올 때/ 분분히 날리던 봄눈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몇 번 기도의 의미로/ 살아왔느냐고 (…중략…) 부산하게 날리던 눈발이 나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몇 번 기도의 의미로/ 살아가겠느냐고’(자작시 ‘옥수동 성당에서’)

지난 주말, 옥수동 성당에서 치러진 혼인미사에 참석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성당에서 치러지는 혼인미사는 참석 전부터 나를 다소 긴장하게 한다. 성스럽고 엄숙한 성당의 내부 분위기가 마치 나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매무새를 가다듬고 차분히 앉아 ‘오늘은 신부님이 어떤 좋은 말씀을 해주실까’ 내심 기대해 보는 동안 나의 안에서는 작은 두근거림마저 이는 것이다. 미사에 참석하는 그 시간만큼은 모든 잡념을 잊고, 우선 나 자신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값진 힐링의 기회로 승화시켜 보곤 한다.

나의 결혼 생활도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겼다. 결혼 30주년을 맞은 부부가 서로 진주로 된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이른바 진주혼(眞珠婚)이 몇 해 전에 지난 것이다. 그러나 과연 내가 그 고귀한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결혼 생활을 영위해 왔는지, 잠시 되돌아보면 많은 아쉬움과 크고 작은 후회가 밀려들곤 한다. 게다가 며칠 후면 닥칠 딸아이의 상견례를 앞두고 있는 처지라 결혼이라는 단어가 예전보다 더욱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지도 모를 일이다.

딸아이 나이 올해 서른. 서른은 넘기지 않겠다던 아이가 아무튼 서른이 된 것이다. 그간 아내를 통해 이따금 귀동냥 식으로 아이가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의 대략적인 정보는 접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형수가 딸아이와는 어릴 적부터 너무 친했던 죽마고우라 이런저런 정보는 신빙성을 더했고 게다가 시부모가 될 사람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아이가 근무하는 직장의 고객이라 딸아이의 객관적 정보 또한 오래 전에 노출된 상태였다.

이러한 필연적(?) 관계가 지속되며 이미 딸아이를 포함한 그들은 결혼을 위한 기본적 조건에 이미 동의한 상태였다. 2주 전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 부부의 허락을 구하기 위해 예비 사위가 인사를 하러 왔었고 나와 아내는 2시간여에 걸친 마라톤 면접 끝에 결국 결혼을 승낙했다.

나의 자식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선뜻 허락할 수 없었던 점은 딸 가진 부모의 공통된 심정이었으리라. 아들과는 다르게, 이미 여성중심 사회로 변화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딸은 ‘빼앗긴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구시대적 착오였을까. 아니면, 사춘기 때 심한 열병을 앓아 나와 아내의 속을 제법 썩였던 탓에 미운 정이 더 들었던 것일까. 상견례를 앞두고, 이제 몇 개월 후면 딸아이가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생활하던 정든 자기 방을 비우고 떠날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마음 한 편이 허전해 온다.

딸아이가 그간 꾸준히 모은 돈으로 혼수 장만은 한다지만 부모로서 좀 더 넉넉히 보태주지 못하니 미안한 마음 가득하다. 되돌아보니,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생활전선에서 뛰느라 자주 가족여행도 떠나지 못했다. 아이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따뜻한 봄날, 딸아이가 좋아하는 바다가 펼쳐진 곳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딸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기원하면서.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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