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찾아서 22 - 성창요업
중소기업을 찾아서 22 - 성창요업
  • 김지혁 기자
  • 승인 2008.07.06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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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옹기 외골 인생, 자식에게 되물림혼 담아
고령토 짓이기고 잿물 바르는 ‘독 짓는 노인’

체험시설 중심 마을지구·쉼터 ‘옹기문화공원’ 예정

울주군 온양읍 옹기마을의 끝자락. 낡은 옹기 공장 안에는 털털거리는 선풍기소리와 서걱거리는 부채질 소리만 들린다. 성창요업 대표 조희만씨의 이마에는 연신 구슬땀이 방울방울 맺히지만 ‘연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울산광역시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가 주관한 제11회 울산시공예품대전에서 조씨는 ‘모정(母情)’이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중소기업이지만 기업 경영에 관한한 정부의 지원이 한푼도 없다”며 옹기제조업의 현실에 대해 조씨는 푸념한다.

◆ 32년 역사 성창요업, 한때 전성기 구가

김치냉장고 등장으로 뒷방 늙은이 신세

‘독 짓는 노인’ 조씨는 지난 1964년부터 옹기를 만들기 위해 물레를 돌렸다. 중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고령토를 짓이기고 잿물을 바르길 45년. 6남매 중 조씨의 형과 동생이 함께 성창요업을 일궜다.

성창요업이 본격적으로 중소기업의 틀을 갖추게 된 것은 지난 1976년. 성창요업의 사업자 등록증에는 업종이 제조업으로 업태는 옹기제조로 명시돼 있다.

이후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옹기제작 기사만 15명에 이르고 옹기를 굽는 가마가 3곳에 이를 정도로 번성을 누렸다.

옹기의 제작과정은 녹록치 않다.

일단 반죽한 고령토를 동아줄처럼 돌려가며 옹기의 틀을 만드는데 이걸 타래라 한다. 타래를 어느정도 돌아가며 올려 본을 뜨고 나면 돌모시와 부채라 부르는 도구를 이용해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으면서 점토가 밀착되도록 다진다. 반복되는 부채질과 물레질로 옹기 모양이 완성되면 숙성에 들어간다. 햇빛이 들지않는 그늘에서 천천히 말라가는 동안 옹기는 자연과 함께 숨을 고른다. 이후 소나무재와 철분기가 많은 약토를 짓이겨 만든 잿물을 입히고 다시 건조과정에 들어가는 데 말리는 시간이 짧게는 2개월에서 큰 독은 4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이후 약 보름간 1300도씨가 넘는 가마에서 보름에 걸쳐 옹기가 구워진다.

평균 제작 기간은 3개월. “급하면 깨진다”는 것이 옹기 철학의 기본이다.

결코 서두름이 없는, 느림의 미학을 갖춘 옹기는 항상 넉넉한 여유로 이 시대를 품어온 우리네 어머니다.

하지만 옹기 전성기도 옛말이 됐다. 지금은 김치냉장고와 각종 밀폐 용기의 등장으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김치냉장고 이야기가 나오자 조씨가 재밌는 일화를 들려준다.

지긋이 두 눈을 감고 옛 기억의 편린들을 주워 담은 조씨는 지난 1995년 쯤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날 창원의 전자제품 공단에서 연구원들이 조씨의 공장을 찾아 특별히 잘 지어진 옹기 김칫독 3개를 주문하더라는 것. 후담이지만 이 사람들이 사간 옹기 김칫독에 센스를 부착, 김치의 숙성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 김치냉장고.

“그 때 알았더라면 김칫독을 팔지 말걸 그랬어” 조씨의 씁쓸한 기억이다.

◆ 옹기마을 성창요업 외 9개 업체 명맥 유지

옹기장 무형문화재 지정 활성화 필요

온양읍 외고산 옹기마을은 지난 1957년 전국 400여명의 옹기장인들이 모여들면서 촌락이 형성된 곳이다. 성창요업과 함께 옹기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는 모두 10개. 매년 울산에서 가을이면 옹기축제가 열리고, 그 의미가 이어져 ‘2009 울산 세계옹기문화엑스포’가 옹기마을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울주군은 옹기문화엑스포를 위해 온양읍 일대에 ‘옹기문화공원’을 오는 9월 착공해 내년 8∼9월께 개장할 예정이다.

옹기문화공원에는 체험시설이 중심이 되는 마을지구와 휴식 및 쉼터 역할을 하게 될 공원지구가 조성될 예정이다.

온양 옹기마을의 획기적인 발전 방향이 제시되고 있지만 성창요업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옹기제조업 특성상 기술 보전이 이뤄져야 하는 숙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흙을 주물러 옹기를 만드는 일은 고된 작업이어서 요즘 젊은이들이 이를 선뜻 배우려 하질 않는다.

숙련된 옹기기사들도 힘에 부친다며 하나 둘 옹기마을을 떠나고 있다.

옹기마을 장인들은 ‘무형문화재 지정’이나 ‘기능장 자격 부여’에 대한 끊임없는 건의를 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조씨는 하는 수 없이 아들 조명철 씨를 붙잡았다. “네가 전수받지 않으면 가마를 모두 없애겠다”며 아들을 몰아붙였다. 다행히 명철씨는 부친의 뜻에 따라 성창요업의 명맥을 잇기로 했다.

“우리 전통인데, 사라지면 우짤깁니꺼” 옹기에 바친 45년 인생, 조 씨는 이따금 울산 옹기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옹기장인에 대한 기술적 가치를 보전해 주고 전통의 명맥을 잇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옹기는 어머니의 자화상”

▲ 성창요업 조희만 대표

조씨 출품작 ‘모정’ 공예대전 대상 수상

울산광역시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가 주관한 ‘제11회울산광역시공예품대전’에서 성창요업 조희만(62)씨가 출품한 ‘모정’이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 작품은 조씨가 자식과 이웃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옹기에 담아낸 것으로 물동이, 소주두루미, 간장병 등 과거 어머니들의 손길이 자주 닿았던 20여 가지 옹기들로 구성됐다.

조씨는 이 작품을 위해 꼬박 3개월을 매달렸다. 지아비와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한 어머니의 참마음을 담기위한 시간들이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품이 있고 현란한 색상대신 아늑한 질감이 느껴지는 옹기야 말로 우리네 어머니의 자화상.

45년 옹기장인이 빚은 이 작품에는 점토의 모래 알갱이가 틈을 만들어 숨쉬는 그릇이 되는 옹기의 비밀외에 옹기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아로새겨져 있다.

/ 글 김지혁 기자·사진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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