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여생 울산서 살렵니다”
“남은 여생 울산서 살렵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1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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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민 120만명 가운데 약 100만명이 외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울산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 처음엔 얼마간 머물다 떠나려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정을 붙여 타향을 고향 삼은 것이다. 먹고 살만한 도시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모 언론기관이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울산과 대전 시민만 90%이상이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말 퇴임한 박성조 전 울산세관장과 송정복 전 동울산세무서장도 울산이 ‘만족’스러워 이곳에 눌러앉아 살기로 했다.

-박성조 관세사

“생동감 있는 이미지, 기후조건 좋아”

공직 생활 25년 동안 36번 이사했다면 1년에 한번 이상 다른 곳으로 집을 옮긴 꼴이 된다. 아무리 공직자라지만 이쯤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말 정년퇴임한 박성조(58·왼쪽 사진) 전 울산 세관장 이야기다. 37번째 둥지를 울산에 튼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눌러 살기로 했다.

이유가 뭘까. “전국 방방곡곡을 다녀 봤지만 울산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습니다. 이곳은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흡인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100만명 가까운 외지인들이 이곳에 눌러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울산이 이런 흡인력을 갖게 된 이면에는 경제적 여유가 자라잡고 있다고 한다. “울산에 처음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생동감을 느낀다고 해요. 먹고 살기 어려우면 그런 활력이 생겨 날 수 없습니다”

울산 예찬론자인 그는 충남 홍성 출신이다. 서울 성남고를 거쳐 육사를 졸업했다. 그의 공직 경력과는 전혀 다른 분야 출신이다. 전방부대 수색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야간 훈련을 하다 그는 수십m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국군 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겼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살 가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회생해 1988년 국방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말 사무관으로 특채돼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곳이 관세청 거제세관 삼천포 출장소장. 그의 말대로 완전히 엉뚱한 곳(삼천포)으로 빠진 셈이었다. 그 뒤 주태국 한국대사관 참사관(2005~2009)을 거쳐 2010년 부 이사관(관세청 감사담당관)으로 승진했다. 평택세관장을 거쳐 2012년 2월1일 울산 세관장으로 부임했다.

박 전 세관장에게 “울산 정서가 조금 배타적이 아니냐”고 묻자 “토착인들끼리 결속하는 측면은 있지만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는 없다”고 했다. 지난해 말 정년퇴임하면서 울산에 관세사 사무실을 열겠다고 하자 “자질, 역량,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울산에 정착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어떻게든 돕겠다”고 하더란다.

그의 울산 정착에는 울산 기후도 톡톡히 한몫했다. “윗 지방에 가 보세요. 겨울엔 너무 추워 아무 일도 못해요. 그런데 울산은 춥다가도 적당히 풀리잖습니까. 한 계절 더 사는 것 같아요” 박 전 세관장의 부인(심미경·57)도 울산 기후가 좋다며 분당에서 울산으로 이사하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울산발전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울산은 항만 도시인데 관련 서비스 시설이 부족합니다. 울산항에 들어오는 외국인 선원들이 모두 부산 쪽으로 빠져 나갑니다. 휴식, 오락, 숙박 시설을 더 확충해야 합니다” 그는 또 도시 경제규모에 버금가는 문화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관에 근무했기 때문인지 바다와 관련된 산업안전재해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했다. 박 전 세관장은 다음달 초 온산읍 울산자유무역지역 관리원에 관세사 사무실을 개원할 예정이다.

-송정복 세무사

“의리 있는 사람들, 생태환경 갖춰”

“서울에서만 30년 근무했습니다. 그때는 서울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울산만한 곳은 전국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서울 한번씩 가면 들어서는 순간부터 머리가 아픕니다. 차 복잡하죠. 사람 많죠.” 그래서 송정복(60·사진)세무사는 지난해 말 동울산 세무서장을 끝으로 퇴임하면서 울산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 아파트를 아직 정리하지 못해 부인(표순남·55)은 아직 서울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올해 둘째 아들(송유인)은 울산대학교에 입학시켰다. 군 복무 중인 첫째 아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가족 모두가 울산으로 모두 옮겨 온 셈이다. “와이프도 곧 따라 내려 와야죠. 남편과 아들이 울산 사는데 올 수밖에 없겠죠.” 30년 서울생활을 하다 2년만에 울산 정착을 결정하자 ‘안쪽’에서 적잖은 비토를 걸었다고 한다. 편리하고 살기 좋은 서울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울산이냐는 것이었다. “울산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나가면 바다 있죠. 북으로 올라가면 신라천년 고도 경주 있죠, 서쪽으로 넘어가면 영남 알프스 있죠. 이런 천혜의 조건을 갖춘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는 울산에 정착키로 결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울산 사람들의 의리’를 들었다. 자신이 퇴임하는 날 동구지역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들이 작업복을 입은 채 퇴임식에 참석했더란다.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핑 돕디다. 어느 도시든 정들지 않으면 못 삽니다. 겉으로 지키는 예의는 금세 알아 차라지 않습니까. ‘울총(울산 총각· 외지에서 와 혼자 사는 사람을 지칭)’에게 모두들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 줬습니다.”

송 전 세무서장은 태화강 공원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솔직히 대도시 중심에 이런 생태강이 흐르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강 따라 대밭길이 펼쳐져 있는 곳은 전국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강에 고기가 산다지만 먹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태화강에서 채취하는 재첩은 없어서 못 먹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은 하루 40~50분 정도 강을 따라 걷는다고 했다.

이런 그도 울산 발전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던졌다. 세무맨 출신답게 유통산업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여자들이 지갑을 열어야 지역경제에 기름이 돕니다. 소비성향은 강한데 비용과 가격이 이에 따라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중구 혁신 도시에 새로운 백화점이 들어서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내다 봤다. 외국인들이 “도시가 어둡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도 야경이나 안전을 위해서 도시는 밝아야 한다고 했다. 동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전문 인력을 유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 사람들은 연봉이 5~6억원 넘습니다. 그들을 운용하는 서비스 용역회사가 있어요. 그들을 잘 활용하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겁니다.”

지난달 10일 그는 중구 홈플러스 건너편에 세무사 사무실을 열었다. 앞으로 상속, 증여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한다. 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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