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1)
옛날이야기(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0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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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승병을 지휘,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사제지간이다. 그런 두 대사가 오랜만에 전운을 털고 금강산 유점사를 찾아 수행을 떠나기로 했다. 몇 날 며칠을 걷고 걸어 그들은 마침내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이르렀다.

스승인 서산은 원래 말수가 적었다. 반면 사명은 말을 많이 해야 직성이 풀렸다. 사명이 이제 금강산도 거의 다 왔겠다, 쉬어 갈 요량으로 주변을 살피니 마침 넓은 잔디밭이 하나 보였다. “스승님 다리도 아픈데 여기서 잠시 쉬어가는 것이…….” 사명의 말에 “그리 하자구나” 서산은 짧게 대답하며 먼저 잔디밭에 앉았다. 서산 옆에 약간 거리를 두고 앉은 사명이 주위를 살피니 아래 풀밭에 소 두 마리가 누워있었다. 털빛이 검은 소와 붉은 소였다. 사명이 “스승님 저기 검은 소와 붉은 소가 보이시지요? 저 두 마리 중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나겠습니까?” 사명이 가리키는 곳을 보던 서산이 “글쎄다. 네가 파자점(破字占)을 잘 치니 처 보거라” 서산의 말에 사명이 점통을 꺼내 흔들다가 글자가 새겨진 막대 하나를 뽑았다. “스승님 불 화(火)자가 나왔습니다. 불은 붉게 타니 붉은 소가 먼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득의만만한 사명의 말에 “그러냐? 나는 아무래도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날 것 같다”라며 서산은 반대로 말했다. 그런데 조금 있다 정말 검은 소가 슬며시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사명은 어의가 없어 서산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서산은 “사명아! 잘 쉬었으니 또 가자구나!”라며 벌떡 일어나 앞서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해가 서산을 넘자 당장 식사와 잠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한참을 가다보니 그리 높지 않은 바위산 옆에 작은 암자가 보였다. 암자에 도착한 두 대사가 인기척을 내자 공양주 보살인 듯한 아낙이 공양간(부엌)에서 나오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오늘 하룻밤 쉬어 갈까 합니다.” 사명이 말하자 보살은 법당 옆 조그마한 요사체(스님이 기거 하는 방)로 안내 했다. 요사체에 들어서 여장을 풀고 좌정 한 두 대사. 이 때 사명은 또 장난 끼를 발동했다. “스승님 오늘 저녁 공양은 무엇일까요?” “궁금하면 또 파자점을 처 보거라” 서산이 짧게 대답했다. 사명은 ‘이번에는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심하며 점통을 흔들다가 한 자를 뽑으니 뱀 사(巳)자가 나왔다. “스승님 뱀 사자가 나왔는데, 뱀은 길고 구불구불하니 오늘 저녁 공양은 국수가 틀림없을 것입니다. 스승님은 어떤 공양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 하시는지요?” 묵묵히 눈을 감고 있던 서산은 “그러냐? 나는 아무래도 국수가 아닌 둥그런 전이 나올 것 같다”며 또 엉뚱한 대답을 했다. 이 말에 사명은 맘속으로 ‘무슨 말씀! 이번에는 틀림없이 내 파자점이 맞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참 뒤 요사체 문이 열리며 작은 소반에 얹혀 들어온 음식을 본 사명은 기절초풍 놀랐다. 소반에는 둥글고 두툼한 감자전 2개가 접시에 놓여 있었다.

공양을 마치고 난 두 대사는 잠시 참선에 들어갔다. 사명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은 검은 소와 둥근 전을 맞추셨는데 제가 친 파자점과 반대 아닙니까?” 항의 비슷한 사명의 말에 서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명아 너는 파자점이라는 지식으로 판단했지만 나는 너의 그 지식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깊이 생각했다. 불은 타오를 때 불꽃이 붉지만 타고나면 검은 숯이 되고, 뱀은 낮에는 먹이를 찾으러 구불구불 돌아다니지만 저녁이 되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똬리를 틀고 굴속에서 잔다. 똬리는 둥근모양이 아니냐? 나의 이 판단은 사물을 그대로 보는 지식을 넘어 지식의 보이지 않는 깊이를 생각하는 지혜인 것이다. 너는 앞으로 불경을 통해 수행을 함에 있어 지식으로만 하지 말고 지혜로서 불경의 깊이를 깨달아 득도 하는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스승의 이 가르침에 확연한 깨달음을 얻은 사명은 벌떡 일어나 스승인 서산대사 앞에 3배 절을 올리며 가르침을 명심할 것을 다짐했다. 단면(斷面)의 지식과 다면(多面)의 지혜는 백지 한 장 차이로 볼 수도 있지만 지식과 지혜가 이루는 결과는 실로 그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이영조 상이군경회 중구지회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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