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국제명절, 설
동아시아 국제명절, 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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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TV 방송은 단연 중국 국영 CCTV의 ‘춘절연환만회(春節聯歡晩會)’이다. 줄여서 ‘춘절만회’라고도 부른다.

‘춘지에(春節)’라는 이름으로 우리처럼 음력으로 설을 쇠는 중국에서 이 방송은 매년 섣달 그믐날 밤 8시부터 5시간 동안 진행된다. 이 방송은 중국에 TV가 보급되던 1983년부터 시작됐다. 올해 방송은 32회째가 된다. 초대형 호화 쇼 프로그램인 이 방송은 2012년 중국인구의 70%인 약 7억5천만명이 시청하는 것으로 집계돼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올해 방송은 펑샤오강이 처음으로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됐다. 펑샤오강은 장이머우와 함께 손꼽히는 중국 최고의 흥행감독이다. 중국에서는 이 방송에 누가 출연하는지 또는 누가 출연하지 않는지가 큰 뉴스라고 한다.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중국인들도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이 방송을 놓치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장 시청율이 높아 황금 광고시장으로 불리는 수퍼볼(미식축구 결승전) 중계를 시청하는 사람이 1억명 정도 된다고 하니 이 방송의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하겠다.

올해 춘절만회에는 한류열풍에 힘입어 한국인 최초로 탤런트 이민호가 출연해 국내팬들의 관심도 모았다.

기자도 울산에 거주하는 중국인들과 함께 올해 춘절만회를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은 물론, 코미디, 만담, 전통극, 교예 등을 망라하는 이 방송은 출연진만 수천명이 족히 됐다. 가수가 노래를 할 때 뒤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가 수백명씩 됐다. 같이 시청하는 중국인들은 5시간 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 명절은 우리에게도 민족 최대의 명절이지만 중국과 대만, 몽골 그리고 베트남에서도 큰 명절이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 나라 출신자들에게 설 명절은 오히려 향수(鄕愁)에 젖는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그나마 춘절만회를 보면서 향수를 달래고 있었다.

국내에서도 이주외국인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들이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설 명절을 타국 땅에서 보내는 이들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중국인들도 우리처럼 섣달 그믐날에는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악귀를 쫓아낸다는 의미로 폭죽을 터뜨리기도 하고 자정에는 자오쯔(餃子)라고 하는 물만두를 먹기도 한다.

같은 동양문화권인 일본은 일찍이 메이지 시대에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주장하며 서구화를 지향했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의 문화권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 개화기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탈아론을 발표한 것이 1885년이다.

일본은 이때부터 음력은 버렸다. 설 명절도 양력으로 쇠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에게도 양력설을 강요했다.

하지만 기제사를 비롯한 각종 기념일을 음력으로 지켜왔던 우리 민족이 양력설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일본에서는 최근 다시 아시아로 돌아 와야 한다는 이른바 ‘복아론(復亞論)’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순수하지가 못하다. 복아론에는 2차 세계대전 중에 그들이 전쟁의 명분으로 주장했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설은 남북한은 물론, 중국과 대만, 몽골, 베트남 등이 같이 쇠는 동아시아 국제 명절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국제 행사도 기획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강귀일 취재1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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