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
천덕꾸러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7.01 2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덕꾸러기는 신분이 천하다는 천(賤)에, 많다는 ‘-꾸러기’가 붙어서 ‘아주 천하다’는 뜻인데 실제 사용할 때는 상가(喪家) 집의 개를 상상하면 본뜻에 가까이 접근한다. 상가 집의 개는 초상을 치르기에 모두 정신이 없는데 음식 준비에 바쁜 부엌을 끼웃거리거나, 사람들 다니는 길에 엎드려 있거나, 오랜만에 찾아온 문상객한테 짖거나, 마당에 차려놓은 음식상에 입을 대거나 하는 정말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천덕꾸러기는 상가 집의 개꼴이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살아본 사람들의 가장 슬펐던 이야기는 주위의 사람들이 그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이다. 욕이라도 해주면 존재한다는 것만이라도 확인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면 ‘똥 친 막대기’만도 못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막대기를 치우려는 행동조차 안 하기 때문에 아주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50대의 주부가 정년퇴임한 남편을 천덕꾸러기로 취급하게 되는 단계가 있어 서글픈 이야기를 소개한다. 남편이 정년퇴임을 하면 자동으로 4년제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첫 해에는 하바드 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둘째 해에는 하와이 대학으로 전학을 하여 한 일 년을 보낸다. 이것도 잘 안 되어 셋째 해에는 방콕 대학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도 공부가 시원치 않아 그래도 우리나라가 가까운 동경대학으로 전학하여 4학년을 다니며 세월만 탓하게 된다. 정년퇴임한 첫 해에는 하는 일이 없이 바쁘다. 그래서 하바드 대학. 그러면서 일 년을 지내도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다음 해에는 하루 종일 와이프 뒤만 졸졸 따라 다닌다. 그래서 하와이 대학. 이것도 지쳐서 셋째 해에는 방구석에 콕 쳐 박혀 꼼작도 안 한다. 그래서 방콕 대학. 4학년이 되면 그래도 졸업을 앞두고 운동이라도 해야지 하면서 찾아가는 곳이 동네의 ‘경로당’이다. 그래서 동경대학.

이 50대의 주부는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가? 이 주부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돈이다. 다음이 자신의 건강이다. 셋째는 친구이다. 넷째는 자식이다. 다섯째는 애완견이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은 애완견만도 못한 존재, 천덕꾸러기 일뿐이다. 이 주부를 국민의 정서로 대입(代入), 대응(對應)하면 다음 이야기가 한결 실감이 난다. 국민은 경제가 우선이다. 다음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셋째는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더불어 살 이웃이다. 넷째는 미래를 생각하는 종족보존의 본능이고 끝으로 취미 생활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첫 해에는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하다. 한 일 년 이렇게 버티다가 국민들 여론만 따라 다닌다. 이렇게도 하도 저렇게도 하다가 결국은 구박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또 일 년을 보낸다. 마지막 해에는 과거의 정부로 일찍 퇴색해버린다. 정부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면 그 피해는 민족이 아니라 ‘국민’이 받게 되어있다.

지금 나라 살림 형편은 정부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다. 일부 언론들이 우리의 여당이나 우리의 야당을 천덕꾸러기로 만들고 있다. ‘휙’하고 바람만 한 번 불면 꺼져버릴 촛불을 문간방의 군불로 만들려고 기를 쓰고 있다. 정론직필(正論直筆)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국민은 이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언론조차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고 있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