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재계의 위기론
정치와 재계의 위기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1.1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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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병 시절, 부대 탄약고에 2명1조 야간경계근무를 나갈 때면 고참병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보초를 서다가 졸거나 잠들게 되면 북한군이 넘어와 죽이고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분단철책선과 멀지않은 위치라서 그럴 듯한 말처럼 여겨졌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적으로부터 내 목숨을 보전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각오가 야물어져 정해진 규정에 따라 반듯하게 근무를 서게 된다. 그러나 1~2년이 지나 병영생활에 이력이 붙게 되면 한겨울 영하 25도 이하를 기록해도 잠을 이기지 못하면 맨땅위에 가마니나 종이상자를 펼치고 교대로, 또는 고참병이 혼자서 잠을 자기도 했다.

5공시절 삼청교육대 끝무렵인 30여년 전에는 공개 군사재판이 종종 있었다.

탈영병, 항명병, 상관폭행병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군사재판을 사단급 또는 연대급 전 장병이 연병장에 모여 참관하곤 했다. 교육효과를 위해서인지, 사단장의 경감 절차를 염두에 둔 포석인지는 몰라도 구형·선고형량도 곧잘 징역 5년을 넘어섰다. 군 영창과는 별도로 사단급마다 군기교육대라는 조직이 있어 재판없는 형벌과 벌칙이 가해지기도 했다. 모두가 불법행위였다.

당시엔 군내 질서유지와 정훈교육 효과를 위해 이러한 공포분위기와 조장된 위기를 이용했다.

정치에도 이같은 방법이 동원됐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도발위험 증폭 유포, 간첩 사건 확대 포장과 같은 공안정국 조성이다. 대형 공안사건은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이슈들을 삼키는 블랙홀 같은 존재였다. 정권의 치부가 드러나는 사건이 터지고 정권에 대한 국민원성이 높아갈 때면 절묘하게 국면전환용 대북·공안사건이 언론에 발표됐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사건들이 순식간에 덮이게 되고 정권은 공안을 튼튼히 한다는 명목아래 국민기본권을 제한하고 정적 탄압에 더욱 열을 올리곤 했다. 아직도 국민의 눈과 귀, 여론을 호도하는 유사행태가 남아 있다.

위기론을 제기하고 겁박을 통해 목적을 보다 손쉽게 이루려는 시도는, 재계의 경우 아직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매년 그러했듯 올해도 재벌그룹 회장들의 새해일성은 ‘위기’였다.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며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 있다”고 진단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는 혁신을 제시했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 역시 “최근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업체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며 “기술의 융복합에 따른 산업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본무 LG그룹회장은 “앞으로 경영환경은 위기 그 자체”라며 “원화 강세와 경기회복 지연 등 경제여건은 여전히 어렵고 선도기업의 독주는 심해지고 다른 범주에 속하던 기업과의 경쟁도 많아졌다”고 언급했다.

위기가 아닌데도 위기라 말하는 것은 유사시를 상정하면 막대한 대가를 동반하는 엄청난 도박이다. 그런데도 사사로운 이익 도모를 위한 위기론이 우리사회에서는 아무런 숙고나 반성 없이 통용되고 있다. 위기론 조장은 정치적으로는 진실을 덮기 위한, 자본가로서는 사람 수탈을 위한 꼼수다.

양 몇 마리가 늑대에 희생되는 것으로 그칠 양치기 소년의 재미삼아 한 거짓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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