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원
파워 오브 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1.0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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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남쪽에 있는 샤프빌(Sharpeville) 마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서 갈라져 나온 범아프리카회의(PAC)가 주도한 대규모 집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수백명이 숨지고 다치는 유혈사태(샤프빌 학살)가 발생한다.

시위가 한창 무르익자 수천명의 군중이 지역 경찰서를 에워쌌다. 그들은 빈손이었고 경찰서 안에 있는 75명의 경찰관들은 자동 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경찰은 시위대에게 즉각 해산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거부하며 맞섰다. 이를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마침내 발포 명령을 내렸다. 달아나던 시위 참가자들과 어린이들이 등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69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부상을 입는 참극이 빚어졌다. 경찰관은 기자들에게 이 참상이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세계대전 전장을 닮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남아공 정부는 사태의 책임을 범아프리카회의에 돌렸다. 2만명에 이르는 무장 흑인들이 경찰서를 에워싸고 총을 쏘았다고 정부는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 ‘파워 오브 원(power of one)’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을 계기로 넬슨 만델라는 꾸준히 유지해 오던 평화시위 운동을 무장투쟁 노선으로 전환한다.

“우리는 마침내 정치적 해방을 이뤘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을 빈곤과 수탈과 고통과 차별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것을 서약합니다.… 우리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든 국민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당당히 걸어가는 사회, 양도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이 보장되는 ‘무지개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억압을 경험하는 일이 다시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1994년 5월 10일, 76세의 투사 만델라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여러 색깔이 어울려 찬란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무지개 나라’를 역설했다. 수십 년 간 이 나라를 찢어 놓았던 ‘아파르트헤이트(백인 지배집단의 인종차별주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남아공 흑인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자유 총선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승리함으로써 만델라는 오랜 흑백 차별의 나라에서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 직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출범시켜, 수십 년간 나라를 할퀸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의 초석을 다지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뿌리 깊은 백인우월주의에 젖은 백인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억눌렸던 흑인들의 요구도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임기 5년간 이런 갈등을 수습하고 왜곡된 사회 구조를 개혁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삶은 자유와 평등을 위한 불굴의 투쟁 그 자체였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헌신은 한 세기에 걸친 대하 드라마이자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기록이었다. 만델라는 불의한 인종차별의 사슬을 끊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존엄을 가지고 사는 ‘무지개 나라’를 꿈꾸었다. 하지만 위대한 꿈은 아직 미완성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그래서 더 슬퍼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무관심과 냉소, 이기심 탓에 휴머니즘이라는 이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지 못했다는 말이 미래 세대에게서 나오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 인도주의가 더 이상 인종주의와 전쟁이라는 별이 없는 한밤중에 묶여 있을 수는 없다고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 옳았음을 우리가 증명하도록 노력합시다. 진실한 형제애와 평화가 금과 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지다고 말한 그가 단순한 몽상가가 아니었음을 우리 모두가 증명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는 떠났지만,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했던 그의 절절한 호소가 새삼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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