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에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를 본 것은 호미곶, 아마 밀레니엄, 2000년을 갓 넘겼을 때로 기억합니다. 해는 수평선 위로 손톱만한 붉은 점을 쏘옥 내밀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저마다의 소원과 무사 안녕을 떠오르는 해에게 빌었습니다. 신세계가 열릴 것 같은 밀레니엄의 흥분은 거기까지.
어쩐 일인지 세기가 바뀌고 소원이 늘어갈수록 세상살이는 점점 더 팍팍해져갑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좋은 차를 굴리고 다니지만 사람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네 삶이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쉽사리 바뀌지 않은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교육이란 이름하에 자식을 볼모삼은 잃어버린 십여 년의 세월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합니까. 야간자율학습이란 괴물은 세기를 넘나듭니다. 그 괴물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같이 한 기억이 손을 꼽습니다. 진로문제나 친구문제로 자식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막막한 노후대책은 보험이나 연금보다 자신들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는 자식들이 알아서 해줄 거라는 막연한 보상심리도 한번쯤 가져봅니다.
집들이로 음식을 하거나, 이웃들과 차를 마셔 본 기억은 20세기에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즘 갓 입주한 아파트는 입구부터 들어가기가 어렵더군요. 입주자의 호출이 떨어지지 않으면 자가용이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뿐 더러 적어도 세 단계는 거쳐야 지인의 집을 방문 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선 이웃들은 서로가 멀뚱거리며 외계인 보듯 합니다. 희한하게 저는 이 모두가 밀레니엄 증후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기가 바뀌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종말론은 이렇듯 변종을 거듭해서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사라진 삶, 이웃들과 따뜻한 공동체의 삶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올해가 청마의 해라고 합니다. 말처럼 다 같이 뛰자고 합니다. 해마다 우리는 더 많이, 더 빨리, 를 외치며 말처럼 달렸습니다. 이제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렵니다. 해돋이를 보며 욕심으로 가득한 소원 따위를 빌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제 옆에 있는 모든 이에게 한 발짝, 한 걸음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제 자식에게 물려줄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말입니다.
<박종임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