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을 짓다
복(福)을 짓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1.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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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질서는 정직한 것이어서 어김없이 1年의 회귀를 마치고 새해를 밝혔다. 우리에게 새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아침이 있고 새 희망으로 한 해를 시작할 원단(元旦)이 있음은 그래서 큰 축복이다.

밤의 어둠이 짙고 오랠수록 아침의 빛은 더욱 밝다. 묵은해의 어려움이 크고 무거울수록 새해의 희망은 더 커진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고받는 덕담이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다. 하지만 스스럼없이 건네는 이 말이 조금은 피상적이다. 어떻게 보면 무심한 덕담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로 손을 맞잡고 반갑게 주고받는 이 말은 우리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미덕 가운데 하나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질을 갖춘 영웅들이 크게 성공하지 못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성공의 요체가 영웅의 기개(氣槪)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복’을 짓는 것이란 사실을 외면 한 탓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아가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복을 닦아야 한다. 복을 닦는 첫째 요건은 ‘나’를 내려놓는데 있다. 이는 사슴이 멋스럽게 여기는 뿔 때문에, 호랑이는 화려한 무늬의 가죽 때문에 사냥의 표적이 되는 것과 같이 나를 위한 부귀, 공명과 끝없는 권력 추구는 곧 나를 패배로 빠지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부질없는 욕망을 버리는 것이 진정한 복을 닦는 길인 것이다.

인의(仁義)를 기본으로 한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던 맹자는 그의 저술(著述)에서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도 복을 누리는 사람의 일상은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먼저 하지 말아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어떤 길을 가기 전에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어딘가 먼저 생각하는, 정직하고 청렴한 생활 태도였다”라고 설파했다. 이 말은 정직하고 청렴한 자세에서만이 복을 짓게 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 “현인은 가능한 만큼이 아니라 마땅한 만큼 살 것이다, 그는 자기 인생을 항상 양(量)이 아니라 질(質)로 생각한다”고 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복은 어느 날 갑자기 얻어지기보다, 정직하게 열심히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청렴한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이것이 양보다 질의 참 복을 누리고 사는 현인의 모습이다. 내일을 향하는 보편적 의지와 지극한 정성만이 하늘에 닿게 된다. 하늘은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는 우주공간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늘을 두려워하고 정직하게 하늘의 형체를 스스로 찾는 사람에게 하늘은 복을 준다. 다시 말해 하늘을 감동시켜 복을 짓게 되고 복을 지으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올 해는 역학(曆學)으로 볼 때 갑오년이다. 갑(甲)자를 떠올리니 을(乙)이 따라 붙는다. 이 나라에서 ‘을’이 되기 싫어도 될 수밖에 없었고 갑의 횡포를 숙명처럼 겪으며 살아 왔으니, 이제 ‘을’이 없는 세상 모두가 ‘갑’이 돼 행복한 복을 짓고 싶은 갑오년의 희망을 가슴 가득히 품어 본다.

오(午)는 12간지(干支)의 일곱째 말(馬)을 뜻한다. 시간으로는 정오(正午) 방위로는 정남(正南)이다. 말(馬)은 주인이 서라면 서고 가라면 간다. 말이 힘차게 달린다는 것과 바른 시간과 방위가 충족되니, 역학적으로 기회의 해다. 그래서 창조경제의 채찍을 휘두르며 급변하는 세계경제의 높은 벽을 뛰어 넘어 거침없이 달려보자.

달리고 또 달린다면 반드시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며,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 사회를 이룩해 온 국민이 진정한 복을 짓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해 인사를 ‘복 많이 받으세요’ 보다 “새해에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하는 건 어떨까.

<이영조 상이군경회 중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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