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勝負)문화의 올바른 변화를 기대하며
승부(勝負)문화의 올바른 변화를 기대하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2.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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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2010년 세계경제의 프리미어포럼 G20 정상회의 개최, 2011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 달성, 그리고 세계적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 이 모두 세계 속에서의 대한민국 위상을 나타내는 용어 들이다.

하지만 유독 정치 분야만큼은 국제적 수준이 아니다. 양보의 미덕은 사라진지 오래고 상대방 발목잡기 등 끝없는 논란만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자주 등장하는 말이 우리의 승부문화이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주로 무협영화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인데, 6~7세쯤 되는 어린이가 어느 날 아무 죄 없이 아버지가 죽음을 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 아이는 원수를 갚기 위해 산속에서 무술의 고수를 만나 수년간 무술을 연마한 뒤 상대방 진영에 들어가 수십명을 처치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태도가 묘하다. ‘우리 편이 누구야?’라는 말로 적군과 우리 편부터 가르기 시작한다.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적에겐 이겨야하고 싸움에 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여긴다. 생전에 내가 원수를 갚지 못하면 자손이라도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살다 보면 직장 구성원 간, 가족 간 혹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과 경쟁이 발생한다. 산다는 게 승부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승부에 대한 정의나 패자 또는 승자가 취해야할 기본자세 등 승부문화에 대한 개념이 올바르게 정립돼 있지 않다. 승부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고 지는 것은 죽음으로 여겨지는 잘못된 인식이 보편화 돼 있다.

인생사에서 연이어 이길 수는 없는 것이고 승부 속성상 이기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지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얼핏 승부는 상대와 싸우는 것 같아 보이지만 냉철히 보면 본인과의 싸움이다. 상대는 본인의 실력을 측정하는 대상일 뿐 실력이 상대방 보다 높을 수도(승자) 낮을 수도(패자) 있는 것이다. 승부는 실력측정을 통해 본인의 실력정도를 알게 되는 것으로 끝을 내야한다. 그럼에도 승부의 결과를 감정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은 승부문화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일이다. 패자는 깨끗이 승자를 인정하고, 승자는 패자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담백한 승패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번 승자가 영원한 승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이런 승부문화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죽어도 이겨야 한다’라고 교육받아 왔다. ‘학교 가서 남에게 절대 맞지 말라’,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반드시 이겨라’라는 말을 마치 세뇌 교육을 받듯이 들어왔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면 마치 무슨 죄지은 같은 표정을 하게 되고, 은메달 10개가 금메달 1개 보다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상한 순위 매김 사회에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패자에 대한 배려, 패자를 감싸주는 포용력, 패자가 취해야 할 예의, 에티켓 등 바람직한 승부문화가 성장할 수가 없었다. 무조건 이겨야하고 이기는 자 만이 영웅시 되는 승리 지상주의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져도 패배를 인정하려들지 않고 져도 비굴하게 질 수밖에 없는 승부문화 풍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제라도 올바른 승부문화에 대한 개념을 바로 정립하고 널리 알려, 승자는 패자에게 너그럽고, 패자는 승자에게 승복하는 바람직한 승부문화가 사회 전반에 정착돼야 한다.

<김영복 동구청 자치민원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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