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흐르듯 해도 떠내려 가네
강물 흐르듯 해도 떠내려 가네
  • 주성미 기자
  • 승인 2013.12.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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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 노을빛 아래 철새의 날갯짓, 물과 시간을 거슬러 걷는 산책길
▲ 태화강 하류에서 물닭, 청둥오리 등 겨울철새들이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 정동석 기자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중>

강은 흐른다. 바다라는 큰 목적지를 향해 지치지 않고 달려간다. 그러다가도 저 강 아래 바닥을 씻어내듯 새롭게 흐른다. 마르지 않는 강은 끝없이 흘러가고 또 새로운 강물을 흘려보낸다. 그렇기에 강물은 시간, 세월에 비유된다. 우리가 강을 바라보는 것은 늘 새로운 ‘지금’을 맞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도심에 강이 흐르는 곳은 많지 않다.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이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흐르는 강을 거슬러 걷다보면 한 해의 풍경도 영화처럼 떠오른다.

쌀쌀한 겨울 태화강변은 여러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중구 태화동 십리대밭교 아래 저물어가는 갈대는 작은 볼거리다. 삼호교 방면으로 걸으면 대나무 숲이 반긴다. 푸른 대나무에 내리쬐는 햇빛은 계절도 잊게 한다.

강바람에 대나무 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익숙해질 때 쯤 숲의 끝이 보인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나오면 태화강을 내려다보는 작은 정자가 눈에 띈다. 마실 나온 이들은 정자에 걸터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절로 쫑긋해지는 귀로 이야기를 살짝 엿듣다가 한마디 거들면 처음 본 이들도 금세 잘 통하는 이웃사촌이 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대숲과는 다른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색 바랜 풀잎이 겨울임을 다시 실감하게 한다.

흔한 풀꽃도 지고 없는 태화강의 주인은 겨울철 날아든 철새다. 최근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태화강을 찾는 겨울 철새는 5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청둥오리와 백로가 먹잇감을 고르는 솜씨와 이들을 피하려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관람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해질녘 태화강을 찾는다면 떼까마귀의 군무를 감상할 수도 있다. 건너편 삼호대숲을 배경으로 노을에 붉게 물든 하늘을 수놓는 떼까마귀의 군무는 장관을 이룬다.

떼까마귀의 날갯짓을 감상하다보면 400년이 훌쩍 지난 보호수를 볼 수 있다. 눈, 비, 바람, 천둥번개의 지나온 세월에 나무는 크게 휘어져 있다. 지지대에 기대 선 나무는 태화강의 화려한 변천사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

보호수를 지나 삼호 인도교를 건넌 뒤 다시 십리대밭교 방면으로 걷다보면 태화강 전망대가 있다. 얼은 몸을 녹이고 싶다면 전망대 안 카페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어둠이 내려앉은 태화강 전경은 도시적이다. 십리대밭교에 형형색색 빛이 들어오고 강에 불빛이 비친다.

지나온 기억을 곱씹으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면 강물을 따라 내려와 다시 ‘지금’에 다다를 수 있다. 철새의 날갯짓 소리가 만들어내는 화음은 길지 않은 산책길의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운이 좋다면 가로등 아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샹송, 팝송, 클래식 등 감미로운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주성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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