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逆轉) 드라마의 추억
역전(逆轉) 드라마의 추억
  • 울산제일일보 기자
  • 승인 2013.11.2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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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이 두산의 승리로 끝나 두산이 3승 1패로 앞섰을 때, 삼성이 역전 우승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마 드물었을 것이다. 4위로 턱걸이 하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두산은 3위와 2위를 잇따라 물리친 뒤 새로운 ‘가을의 전설’을 잉태하기 위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이미 9부 능선을 훌쩍 넘어선 두산은 최소 93%라는 우승확률을 확보하고 있었다. 역대 30차례의 한국시리즈에서 3승을 먼저 한 팀이 시리즈 우승을 내준 경우는 단 2차례 뿐. 28차례의 우승은 3승 고지를 먼저 점령한 팀의 몫이었다. 3승 1패는 역대 13번 있었는데 이 경우 앞선 팀들이 예외 없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은 턱 없이 빗나가고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삼성의 ‘대반격’이 5차전부터 펼쳐지기 시작했다. 4차전까지 1승 3패로 몰렸던 벼랑 끝의 삼성이 마침내 5, 6, 7차전을 기적적으로 싹쓸이하며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짜릿한 역전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게다가 3년 연속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며 사상 첫 3년 연속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라는 금자탑도 세웠다. 이처럼 스포츠에서는 역전 혹은 반전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특히 야구가 그렇다.

1972년 군산상고와 그 무렵 최고명문 부산고와의 황금사자기대회 결승. 9회 말 4-4 동점, 투아웃 주자 2루. 부산고 투수 편기철의 공에 군산상고 3번 김준환의 방망이가 날카롭게 돌았다. 우익수 앞 안타. 2루 주자 양기탁은 힘차게 3루를 돌았고 홈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주심이 아웃을 선언하며 경기가 연장으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3루수의 주루방해가 인정됐다. 5-4, 군산상고의 극적인 우승이었다. 1-4로 지고 있던 상태에서 시작된 9회 말에 천금 같은 4점을 뽑아낸 역전승은 이렇게 한 편의 영화처럼 마무리됐다.

이때부터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라는 명예를 얻게 됐다. 새로운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군산상고의 ‘역전 스토리’는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라는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그 인기가 치솟았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 중반까지 거의 ‘전국구’였다.  

군산상고가 한참 인기를 누리던 때인 1982년, 또 하나의 잊지 못할 대역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해 9월 14일, 잠실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였다. 일본을 만난 한국 팀의 타선은 일본 선발투수 스즈키의 구위에 눌려 내야안타 한개밖에 뽑아내지 못한 채 8회까지 끌려가고 있었다. 스즈키는 과묵한 사육사처럼 놀라운 제구력과 변화구를 채찍 삼아 한국 타선을 압도하고 있었다. 도무지 빈틈이 없는 투구였다. 그러나 2번 타자 김재박의 절묘한 개구리 점프 번트와 5번 타자 한대화의 통렬한 3점 홈런으로 대 역전극을 벌이며 결국 한국이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당시 MBC의 명캐스터 김용은 흐느끼고 있었다. 해설을 맡았던 허구연도 논리정연한 음성은 뒤로 한 채 김용과 함께 ‘한국’과 ‘한대화’ 단 두 단어만을 외치며 흐느꼈다. 그러나 그들의 흐느낌은 전 국민 모두를 대신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은 한국 야구 사상, 아니 한국 스포츠 사상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날이었다.

1회부터 9회까지 스물일곱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야구 경기. 그 기회를 모두 날리기 전까지 절대 지지 않는다는 믿음과 단 한 방의 홈런으로 4점 차이까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야구다. 그래서 역전이 야구의 본질적 특징으로 꼽힌다. 그러므로 끈기와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결정적 장면이 많이 나오는 야구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2013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역전의 연속이었다. 준프레이오프에서 넥센을 꺾은 두산의 역전이 그러했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역시 역전 우승했다. 우리 인생에서의 반전 혹은 역전을 생각하게 하는, 오래 기억될 명장면이었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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