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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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6.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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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의존하는 어려운 생활 이어져

학교 선배의 주선으로 팥빵장사 시작

어려서 찌들게 고생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겨우 졸업하여 조그만 직장을 구했는데 회사가 망하여 다시 고생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아이고, 이 고생…, 하면서 좌절하고 만다.

여자 아이가 어렸을 때, 집안 살림이 쪼들려 밥 먹는 날 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는데, 시집와서 살다보니 남편의 사업이 잘 못되어 또 다시 굶게 되면, ‘아이고, 또 고생?’ 못 참고 가출해버린다.

반대로 부잣집, 양반집에서 귀하게 자라고, 학교에 가서도 등록금 걱정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 사람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도 다녀보고 사업도 하다가 실패를 하여 고생길에 들어섰을 때, ‘사람이 살다보면 이럴 때도 있구나’하면서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그러고서 새롭게 다짐하고 새 출발을 시도한다.

‘아버지의 공직(당시 지방의 조선인으로서는 최고의 공직인 면장을 하였음) 생활이 끝나자 가족의 살림살이는 어려워졌고, 한참 공부하던 나와 동생들의 학비를 제때에 마련하지 못해 남에게 의존하는 어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의 든든한 가장이었고 비록 학비조차 제때에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우리 가족의 모든 생활의 중심에는 항상 아버지가 계셨다.’

동강 선생이 팔순 때, 이러한 회고를 하면서 아버지를 한 가운데 두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도 일부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위를 지키고 있는 ‘밥상머리의 예절’이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할아버지, 다른 집안의 어른들과 함께 밥상을 마주했을 때, 가장 어른 되는 사람이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하면서, ‘자, 밥 먹자’해야 다른 사람들도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 예절이다. 사자, 들개, 하이에나까지도 사냥한 짐승을 먹을 때, 순서를 지키는데 사람이 순서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식사를 시작하는 것은 가장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행동이다. 동강은 대가족의 가부장적 관습에 익숙했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고생을 고생인줄 몰랐다.‘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운 시기였지만 당장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나는 다른 이들의 고통을 돌아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앞뒤를 가릴 것도 없이 친분이 있던 학교 선배의 주선으로 교내에서 팥빵장사를 시작하였다. 학교로 빵을 배달 받아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장사를 했는데, 처음 장사를 시작한 날의 쑥스러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직 해방이 되고 난 직후이니까 경성제국대학에서 국립 서울대학교로 이름이 바뀌고, 의과대학 예과 2학년 학생이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 번 더 쳐다보던 시절에 빵장사를 하였다. 고생이 고생인줄 모르고, 공부를 하다보면 이런 때도 있구나 하면서 잘 넘겼다. 조선시대의 역관, 미군정 시절에는 통역관이 되어 살아가는 맛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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