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쓰임새, 실용과 예술로 꽃피다
천만 쓰임새, 실용과 예술로 꽃피다
  • 양희은 기자
  • 승인 2013.11.2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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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영담한지미술관… “종이는 생각·역사·문화담는 그릇” 한지 명맥 잇는 영담스님
▲ 경북 청도의 영담한지미술관에서는 종이의 무한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영담선지’를 사용한 미국작가의 작품, 종이로 만든 모자 공예품, 큰 창문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된 종이 커튼, 골목 입구에서 바라본 미술관 전경.

미술관 가는 길

울산에서 경북 청도 운문사로 넘어가는 산길은 11월 중순 늦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운문사 초입 삼거리에서 절 반대 방향으로 5분 정도를 자동차로 달리면 길 가장자리에 ‘영담한지미술관’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보고 오밀조밀 단풍터널을 따라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시골집 몇 채가 자리하고 있다. 작은 골짜기 앞에 다다르면 벽면에 ‘영담한지미술관’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늦가을 볕 아래 툇마루에 앉아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는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이 정겹다.

미술관 문으로 들어서자 정면 위쪽에 작은 법당이 있다. 미술관 앞 마당을 두리번 거리는데 건물 안쪽에서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비구니승이 문을 열고서 환한 웃음으로 나온다.

▲ 영담스님의 정성이 느껴지는 닥종이 공예. 작품 하나하나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담스님 종이와 작품 한자리에

‘영담한지미술관’은 보갑사라는 작은 절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보갑사의 영담스님이 관장으로 있는 경상북도 등록 제2호 사립미술관이다.

영담스님은 ‘한지(韓紙)’를 직접 이 곳에서 만들고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2층으로 구성된 미술관에는 영담스님의 평면작품과 닥종이 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다. 2층 안쪽에는 스님이 만든 종이인 ‘영담선지’를 주로 작품에 사용하는 미국 작가들의 작품이 6점 정도 걸려 있다.

평일 낮이라 찾아오는 관람객은 뜸하다. 스님은 관람객들이 올 때 마다 반갑게 맞는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더 환한 웃음으로 대한다. 관람객들이 종이나 작품에 대해 물어오면 자세하게 대답해 준다. 우리 종이의 뛰어남도 빼 놓지 않고 설명해 준다. 전시관 구석에서 종이 뭉치를 한아름 꺼내 와 얼마나 좋은 종이냐며 한참을 설명하는 스님의 눈빛이 진지하다.

전시장 곳곳 창문에는 어김없이 종이가 붙어있다. 작은 창문에는 흰색 종이를 투박하게 붙였지만 가을 햇빛이 은은하게 통과해 전시장을 더 운치있게 만들어준다.

전시장 큰 창문에는 종이로 만든 커튼이 달려 있다. 작품으로 전시해 놓은 건지 햇볕을 가리기 위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커튼 디자인에 밀리지 않는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닥종이 인형들은 꼬마들에게 인기만점이다. 종이라고 설명해 주면 다시금 발길을 돌려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들도 있다.

스님은 “종이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며 “현대인의 생활 공간에서 종이를 응용한 작품을 재현하는 것이 우리 종이의 역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관람료는 2천원. 스님의 친절한 설명은 덤이다. 여름방학 기간에는 학생들을 위한 종이만들기와 창호지 붙이기 등 체험활동이 자주 있지만 겨울에는 없다.

-한지(韓紙)가 양지(洋紙)에 이름뺏겨 안타까워

▲ 영담스님이 닥종이 공예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종이라는 좋은 우리말을 두고 왜 한지(韓紙)라고 구분해 써야 하는 건지 안타깝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이후부터 양지(洋紙)에게 종이라는 이름을 뺏기고 한지라고 부르게 됐는데 난 사람들이 종이라고 부르면 좋겠어.”

줄곧 한지라고 질문한 기자에게 따끔한 한마디가 전해졌다. 그간 우리 종이를 한지라고 불러 왔는데 A4지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스님은 어린 시절 한의사 아버지의 영향으로 종이를 가까이 했는데 텅 빈 종이의 느낌이 한없이 편안해서 좋았다고 했다. 약을 싸던 하얀 순지가 마냥 좋았단다.

과거부터 스님들은 종이를 만드는 중심에 있었다. 자급자족이 몸에 밴 스님들은 불경을 쓰고 보급할 목적으로 절 내부에서 종이를 만들었다. 지식층이면서도 종이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었다.

영담스님은 “중국의 어느 문헌에는 신라의 ‘백추지’를 명품종이로 꼽고 있고 고려지도 유명한 우리나라 종이였다”며 “우리나라는 삼한사온의 천혜 환경조건과 좋은 닥나무를 생산할 수 있어 종이의 질이 매우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35년 전부터 종이를 만들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스님은 종이가 문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했다.

“인간의 감성과 정신, 뜻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종이이고 종이는 역사의 기록을 담아내는 그릇이지. 거기다 정서표현의 바탕이 된 것이 종이니 단순한 도구가 아닌 정신문화라고 할 수 있지.”

양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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