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만남
두 만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1.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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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약속을 한 날, 시간이 빠듯했다. 초등학교 앞, 택시 정류장. 여러 대의 빈 택시가 도로에 줄맞춰 서 있다. 외출하려 집을 나서는 늦은 오전 시간에 보는 낯익은 풍경이다. 몇몇의 기사가 파고라 밑에 옹기종기 앉아 방담을 즐기고 있었다. 그 중에 하얀 머리칼의 늙수그레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맨 앞에 정차된 택시로 다가서자 잽싸게 그가 다가와 운전석에 앉는다. 행선지를 말하고 나서 영재학교에 들어간 손자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냐고 물었다. 그의 눈길이 룸미러를 통해 대번에 내 얼굴로 건너온다. 나는 웃으면서 그의 택시를 두어 번 탔다는 말을 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파고라 밑에서 쉬는 기사님을 봤다고도 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쑥스럽기도 하고 멋쩍기도 해서 아는 체를 하지 못했다는 내 말을 듣고 머리가 하얀 늙은 기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약속장소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영재학교를 다니는 손자가 상을 탔다는 이야기와 운전하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승객에게 길을 물어 보는 기사가 있어 불편했다는 이야기, 라디오 뉴스를 듣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서로 다른 의견을 보태는 따위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택시비를 치루고 안전 운전하라는 내 인사에 기사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만나면 서로 아는 체를 하자면서 웃었다.

해가 바뀌기 전에 만났으니 그녀와의 만남은 거의 일 년만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거의 만나지 않았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으로 안부를 알던 차에 얼굴을 보고 처리해야할 일이 생긴 터였다. 우리는 만남의 간극도 잊은 채 소리 높여 웃었고, 톤을 높여 농담을 주고받았고, 우리가 알던 사람들의 안부와 각자 겪은 어려움을 이야기 했다. 우리는 어둑해질 때까지 커피를 마시고 백화점에 들러 각자의 용무를 보고 이른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다.

조지오웰의 ‘1984년’엔 ‘이중사고’라는 개념이 나온다. 현실통제라 불리기도 하는 이중사고는 완전한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교묘하게 날조된 거짓말을 말하는 것, 말살된 두 개의 의견을 동시에 가지고 모순이라는 걸 알면서 그 둘 다를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해 논리에 대항하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믿으면서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잊어버릴 필요가 있는 것은 죄다 잊어버리고 필요할 땐 언제든지 다시 기억 속으로 끌어들였다가 다시 재빨리 잊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고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인 세상이다.

그녀는 참 여전했다. 제멋대로 누군가를 데리고 나오고,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의 뒷담화를 하고, 어리광을 부리듯 투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은 생략한 채 부탁을 하고, 남의 노력을 무시한 채 시샘을 했다. 그녀의 편을 들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의견일치를 본 상황도 물론 있었다. 허나 몇 번을 머뭇거리다 약속을 잡아서일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잠깐씩 찾아오는 침묵이 있었다. 조지오웰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이중사고의 틀에 갇혀 진실을 감추는 이들처럼 겉돌았다. 결국 그녀와의 만남은 반가움보다는 ‘부담’과 ‘여전히’와 재빨리 잊어야 할 기억으로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침에 봤던 택시 정류장엔 한 대의 택시도 없었다. 길가에 세워놓고 무작정 승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퇴근 시간이었으니 택시가 있을 리가 없었다. 머리가 센 기사의 얼굴과 그녀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사람들을 남다르고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오롯이 시간의 힘이 아닐지도 모른다. 눈빛 마주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서로의 마음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세월의 테가 더해짐에 따라 쳐내야 할 사득다리 같은 만남도 분명히 있으니 말이다. 두 만남을 되돌아보는 내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흐른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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