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스 걸’에 빠져 가산탕진 울산청년
‘뻐스 걸’에 빠져 가산탕진 울산청년
  • 김잠출 기자
  • 승인 2013.11.1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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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신문에 비친 울산<1>
울산에 자동차가 처음 운행되기 시작한 것은 1918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노선별 운행은 1920년대에 들어서다. 그 후 1930년대 신문에 울산의 ‘시내뻐스 안내양’과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가 등장한다

‘女車掌美貌에 銷魂 家産蕩盡코 泣訴 蔚山에 철없는 사내’(동아일보, 1938년 7월19일)

“미모의 여차장에 반해 큰 돈을 쓰고 헛물만 켠 얼빠진 사내와 또 이를 깜쪽같이 속인 운전수와 (여차장) 명콤비가 울산에 생겼다...”는 내용이다.

버스 안내양의 공식 명칭은 차장(車掌)이었다. 차의 대장(長)이 아니라 차의 손발이란 뜻의 한자 용어를 사용했다. 차장은 1980년대 자율버스가 다닐 때까지 있었던 직업이다.

1928년 서울에 처음 등장한 버스 차장을 근대 조선 사람들은 ‘뻐스 걸’이란 신조어를 많이 사용했다. 당시의 신문을 보면 ‘뻐스 걸’은 젊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신문 광고란에도 그렇게 소개하고 있다. 1970년대 스튜어디스에 못잖은 인기였다고 볼 수 있다. 광고나 신문 기사를 보면 경성의 운행 초기 버스 차장의 지원 자격은 ‘16세 이상 20세 미만의 보통학교 졸업 이상 학력의 여성’으로 돼 있다. 그런데도 경쟁률이 4.5대 1에 달했던 적도 있었다.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손님들에게 호감을 줄 만큼 얼굴이 예쁜 여성을 뽑으려고 ‘이력서에 상반신 사진을 첨부하여 신청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용모 단정한’ 차장들에게 남자들이 많이 따랐던 모양이다. 차장이 곧 ‘모던 걸’이었던 셈인데 울산에서도 미모의 차장에 빠진 청년이 있었으니 1년에 당시 돈으로 2천원을 날리기까지 했다.

“울산군 00면에 거주하는 최정은 울산읍내 모 자동차부에 여차장으로 근무하는 김구녀란 미모의 처녀에 눈이 어두워 만 1년간 사모하여 타기 싫은 자동차를 매일 타고 다니며 그를 연모하여 타는 가슴으로 지내왔던 바...감언이설로 꾀어서...현금 유성기 기타 패물등을 깜쪽같이 횡령하였든 바 최정은 이로 말미암아 만 1년간 자동차비 기타 등으로 2천원이 넘는 손해액을 봤다. 미모의 아가씨에 헛물만 켜고 속기까지 하였고 패가망신했다고 절절히 주재소에 호소하여 날카로운 조사를 진행중...”(동아일보, 1938년 7월19일) 사건의 중심에 여인이 있다는 말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버스 차장의 미모에 홀려 가산을 탕진한 청년, 근대 신문에 비친 씁쓸한 단면이다.

김잠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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