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주의보
늦가을 주의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0.3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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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등단 전인 2008년 늦가을 무렵, 심한 조울증(躁鬱症)을 앓았다. 뚜렷한 원인을 짚어낼 수 없는 이른바 ‘양극성 우울증’인 ‘조울증’에 몹시 시달렸다. 겨울로 접어드는 늦가을의 일조량(日照量) 감소와 연일 이어지는 흐린 날씨 탓으로 돌리기에는 납득할 수 없는 증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직장인의 매너리즘을 대변하듯 무기력한 나날의 무거움이 나의 어깨를 아프게 짓누르고 있었다. 한동안 의존한 것은 알코올이었다. 스스로 내린 처방에 만족하며 어설픈 치유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때로는 나를 세상과 격리시킨다는 것이 무척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불협화음의 날들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 없는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수십 년 세월의 두꺼운 벽이 한 순간에 무너지며 고교 은사님과의 만남이 이뤄졌던 것이다. 국어교사로 은퇴하신 뒤 시인의 길을 묵묵히 걷고 계시던 은사님과 우연한 기회에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됐다. 강산이 세 번 이상은 변한 오랜 세월의 뒤였으나 은사님 관찰력은 여전히 날카로우셨다.

“자네 무척 힘들어 보이는군. 글을 다시 써 보게. 아마 좋은 약이 될 거야”

이미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제자의 감성을 잘 파악했으면서도 짧게 던져 주셨던 그 희망의 메시지는 나를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 나오게 한 소중한 빛이었다. 그 고마운 희망의 끈을 잡은 지 몇 개월, 나에게는 서서히 희망의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회색빛은 서서히 푸른빛으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더 또렷이 나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우울증’보다 더 무섭다는 ‘조울증’이 서둘러 고별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를 뒤덮었던 먹구름은 그렇게 흩어져 갔다.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는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특히 일조량이 큰 폭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는 늦가을부터 자주 발생하므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나이, 인종, 지위, 성별을 떠나 누구에게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방치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우리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인간 내면의 가치 추구는 차츰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어 우울증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울증은 가장 흔한 정신과적 질환으로 인구의 1~5% 정도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이며 남자는 10~15%, 여자는 15~20%가 우울증을 앓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노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는 노인 우울증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우울증 환자 5명 중 4명은 자살을 생각하며 6명 중 1명은 실제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니 심각한 질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극복해 가며 세상에 빛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슈베르트, 말러, 빈센트 반 고흐, 버지니아 울프,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휘트먼, 에드거 앨런 포, 마크 트웨인 등 한 시대의 큰 획을 그었던 유명한 예술가들은 우울증의 큰 고통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또 다른 예술적인 영혼을 불태워 인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정신분열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울증의 근본 원인은 아직 또렷이 밝혀내지 못했지만 유전적 요인, 심리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조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요즘 ‘계절성 우울증’도 서서히 고개를 든다고 하니 이 독감 바이러스(?)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요령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지금, 삶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웅크리며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이 한 마디를 꼭 들려주고 싶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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