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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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6.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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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티 가시지 않아 매번 소매치기 당해

고민 끝에 용돈속에 ‘사정’ 쪽지 넣고 다녀동강 선생의 울산 고향 집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져 서울의 청진동, 어느 부유한 집에 가정교사를 하며 전차를 타고 다녔다.

시골티가 아직도 가시지 않아서 전차를 타면 동강 선생은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었다. 어렸을 때도 사람을 순박하게 잘 믿고, 특히 낭만적 기질 때문에 혼자서 하늘의 별을 보고 사색에 잠기던 동강 선생은 비좁은 전차 안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소매치기 당하는 줄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정말로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의 전차 속이었다. 아무리 눈을 뜨고 있어도 소매치기들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은 시골 사람이나 서울 사람이나 비슷했다. 매번 돈을 소매치기 당했고, 동강선생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친구들한테 얘기하기도 창피하여 혼자서 고민하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울산 촌사람의 인심, 동강 선생의 인심이 재치와 함께 머리를 스쳐갔다.

‘이 돈은 시골에서 부쳐 온 나의 한 달 생활비입니다. 사정 좀 보아주시오. 나는 굶어야 합니다. 경복중학교 O학년 O반 박영철’이라는 쪽지를 용돈의 가운데에 넣고 다녔다.

어느 날, 드디어 올 것이 또 오고 말았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허망한, 허탈한 웃음으로 낙담해 있으면서 이번에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안호삼 선생님의 도움으로 며칠을 버티고 있었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학교의 교무실로 불려갔다. 담임선생님이 불쑥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너, 이 거 무슨 돈이야? 돈만 들어 있잖아!’ 내 뱉으며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부쳤습니까?’ 선생님은 편지봉투를 동강 선생에게 건네주려다 말고 봉투의 뒷면을 보았다. 아무 이름도 없었다. ‘하여간 너한테 왔으니 받아. 얼만지 세어봐.’ 동강 선생은 돈을 받아들고 어색한 동작으로 돈을 세는데 중간에 무슨 쪽지가 나왔다. ‘어, 이거 무슨 쪽지?’ 선생님이 무슨 의심을 할까 보아 바로 펼쳐서 읽었다. 연애편지는 금지된 서적과 같이 벌을 받던 시절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학생한테 오는 모든 편지를 담임선생님이 사전에 검열한 뒤 학생들에게 돌려주었다. 불순 사상이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명분이었다.

‘미안하오. 반은 돌려주오.’ 연필로 삐틀빼틀 갈겨 쓴 한글이었다. 선생님도 같이 읽었다. 조선인 선생님이니 당연히 읽을 수 있었다. 소매치기가 동강 선생의 훔친 돈에서 반은 자기가 갖고 나머지 반은 우체국을 통해 되돌려준 것이었다. 염치가 반이라도 남아있는 소매치기였다. 선생님은 다른 일본 선생들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조선 도둑은 이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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