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절많던 학창시절, 지나고나니 사통팔달”
“곡절많던 학창시절, 지나고나니 사통팔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9.2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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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상 前 울산 청소년선도지도회 회장
 

고등학교 3년 학적부에 기록된 그의 학업성적은 ‘끝에서 10위권’ 이다. 유도한답시고 3학년 2학기 학과수업을 거의 빼먹었기 때문이다. 그런 꼴통이 지금은 종업원 1천여명을 거느린 대덕그룹 회장이다. 자신의 과거사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는 청소년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최해상(57·사진) 전 울산청소년선도지도회장 이야기다. 그는 오는 10월 1일 사회봉사·효행 부문 시민대상을 받는다.

“저만큼 출세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끝에서 몇 번째였는데 동문회장만 2년째 맡고 있으니 출세한 거죠. 학교 다닐 때 ‘농땡이’를 쳐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증표가 바로 접니다” 말마따나 최해상 전 울산청소년 선도지도회장은 맡은 직책만 4개다. 울산미래한국국민연합 대표, 학성고 총동문회장, 대한적십자사 울산봉사협의회장, 울산청소년 육성위원회장 등이다. 하지만 대부분 봉사하는 자리다.

최 전 회장은 1976년 용인대 유도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졸업 전 3개월만 정규수업에 빠지고 유도 연습만 하게 해달라고 담임선생님에게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그 때부터 최 전 회장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유도연습만 했다. 그러니 학과 졸업성적이 좋았을 리 없었다. 그래서 그의 학성고 3학년 학과 성적은 전체 600여명 가운데 거의 꼴찌다. 학교에 나가지 않고 운동만 한 것은 당시 교육체계에 대한 불만 표출이었다고 그는 솔직히 털어 놓는다. 지금은 각자의 재능과 자질 계발을 중요시하지만 당시는 학과성적으로 능력을 평가받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최 전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런 교육체계는 문제아를 더욱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고 말한다.

최 전 회장이 울산 청소년 선도지도회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도 유별나다. 1983년 울산초등학교에서 열린 ‘청소년 돕기 유도시범 경기’에 갔다가 평회원이 됐다. 이어 학성공원, 태화강 둔치 등 우범지역을 순찰하는 특별활동 기동대장 겸 사무차장을 3년 동안 맡았다. 그 뒤 사무국장, 부회장을 거쳐 회장이 됐다. 그의 말에 의하면 소위 ‘낙하산’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간 케이스라는 것. 그는 지난해 초 8년 동안 맡았던 회장직을 차기 회장에게 물려줬다. “봉사단체 대표는 대개 재력이 있거나 사회적 명망이 있는 분들이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밑에서부터 선도를 하며 위로 올라갔어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자부심을 가진다고 했다.

최근 그의 사회봉사활동을 두고 정치적 야망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하자 그는 두 손을 내 흔든다. 정치 쪽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다. 부친이 정치하느라 가산을 탕진했는데 그걸 하고 싶겠느냐고 반문한다. 부친 최석순씨(작고)는 자유당 시절 범서면 의원을 지냈다. 5·16 이후에는 ‘요원 교육’을 받고 허리에 커다란 ‘마패’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 마패 하나면 웬만한 일은 ‘무사통과’였다는 게 최 전 회장 큰형의 회고다. 그가 말하는 마패는 당시 막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지방 조직원들에게 발급한 일종의 신분증명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선친은 이후 공화당 시절 울산지구 공화당 관리장(현 조직부장급)을 맡았다. 선친이 그렇게 정치판에 끼어드는 통에 무거동 ‘땅 부자’가 하루아침에 쫄딱 망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 바람에 최 전 회장을 비롯한 7남매가 부모 혜택을 전혀 못 받았다고 한다. 이런 과거사가 있는데 정치에 관여하고 싶겠느냐는게 그의 이야기다.

가난은 겪어 본 사람만 안다고 했던가. 1982년 유도관장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남루하지만 당차 보이는 아이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못하고 있다며 운동을 좀 하게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당시 최 관장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고 그날부터 그 아이는 유도관에서 지내며 운동을 계속했다.

그 아이는 2년 뒤 현대공고 유도부에 입학해 학업을 마쳤고 용인대 유도학과를 졸업했다. 그렇게 만난 제자 권금영(50)씨는 지금 진주에서 유도관을 운영한다. 그런데 권 관장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소년을 제자로 길러냈다. 최 전 회장의 ‘유도 3대’는 이렇게 이뤄졌다. 이번 연말엔 3대가 모여 한잔 할 생각이란다.

성장과정, 사회봉사활동 내용을 보면 그는 어쩔 수 없는 ‘꼴통 우익보수’다. “구태적인 반공이 아니라 확고한 국가관, 안보관이 필요합니다. 6·25가 ‘북침’이라니 말이나 됩니까” 그가 대표로 있는 울산 미래한국국민연합도 사실상 우익보수 성향을 띠고 있다. 청소년 선도와 올바른 국가관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어릴 적에 다소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국가관이 투철하면 성인이 돼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온실에서 성장한 아이들보다 오히려 더 폭이 넓고 담대하다는 것이다. “요즘 뭔가 한가지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들 하잖습니까. 저는 그 뭔가가 바로 확고한 국가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5060들의 국가관이 확실했기 때문에 지금의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미래한국국민연합 공동대표인 권영해 전 국방장관이다. 70대 고령임에도 전국 안보 순회강연을 하고 있는 권 전 장관과는 자주 만나고 조언을 듣는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가 간절곶 해맞이 행사에 국기 게양식을 곁들이자고 제안한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최 전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청소년 육성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했다. 특히 소위 문제아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보호관찰소에서 강연을 하면 그 애들과 눈빛이 서로 통합니다. 동질 의식이라고나 할까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하는 말은 좀 더 가슴에 와 닿기 마련이죠” 가식적인 선도가 아니라 피부로 느낄수 있을 정도로 다다가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앞으로 할 일은 뭐냐고 묻자 그는 “학성고 동문들의 힘을 단합, 결집시켜 지역사회에 공헌토록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울산시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글=정종식 기자·사진=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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