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스토리
토끼 스토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9.2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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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아지와 더불어 가정에서 키울 수 있는 애완동물로 토끼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한 마리 당 가격이 3만원 정도로 마트에서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토끼가 어릴 때는 사랑받다가 성토가 되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다. 산에 버려지거나 심지어 토끼탕 집에 팔려가는 경우도 있다.

오늘 토끼 스토리는 흔히 애완동물 사육과정에서 생기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토별’이라는 아주 특별한 애완동물에 대한 것이다.

재작년 추석 때 쯤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딸이 마트에서 어린토끼 한 쌍과 토끼장을 구입했다고 연락이 왔다. 추석 때 받은 용돈으로 혼자 결정해 구입했다는 것이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생물은 반품이 되지 않는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집에 데려다 키우기로 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완전히 하얀색 이고 다른 한 마리는 검은색 문양이 있는 점박이 토끼였다. 필자의 딸애 이름 마지막 글자 별진(辰)을 따 이름을 ‘토별’이라고 지었다.

키우던 도중 점박이는 그만 죽었고, 한 마리 남은 하얀색 토끼인 ‘토별’이는 그런대로 건강하게 자랐다. 동물병원에 가서 예방접종도 했고 알파파와 건초 등 사료를 많이 먹어 건강하게 자랐다.

하지만 ‘토별’이가 성토가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큰 토끼를 언제까지나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산으로 방출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필자가 시골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새로 전근 간 곳에는 닭장이 있었는데, 토끼와 닭은 서로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해 토별이를 닭들과 함께 지내도록 했다. 그러나 한 달 쯤 지나 닭들을 모두 처분하는 바람에 토별이 혼자 남게 됐다. 그런데 토별이를 본 직장동료들이 토끼가 혼자 있어 외롭게 보인다고들 했다. 아파트보다는 좋은 환경이지만 넓은 공간에 토끼 한 마리만 댕그라니 있어 외로워 보였던 모양이다. 할 수 없이 검은색 수컷 한 마리를 구해 함께 있게 했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토별이는 배가 점점 불러오고, 부드러운 짚단과 이파리, 자신의 털을 뽑아서 바닥에 까는 등 새끼를 낳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뒤 며칠 후 토별이가 유난히 지쳐있고, 배가 홀쭉해진 것 같아 닭장 안쪽의 뚜껑을 살짝 열어 봤더니 황토색 피부모양의 새끼 몇 마리가 엉켜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주 들락거리면 어미가 새끼토끼를 물어 죽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다시 며칠을 기다린 뒤 들어다 보니 제법 하얀색과 검은색, 얼룩무늬로 된 여섯 마리가 뒤 섞여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정말 귀엽고 생명의 신비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필자가 토별이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생명체의 환경 귀속성이다. 대다수 애완동물은 주인인 ‘인간’이 제공하는 환경과 행동에 따라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사람과 달리 이성이 없이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주인하기에 따라 순할 수도, 따를 수도, 귀여울 수도, 예쁠 수도 아니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물며 동물이 이럴진대 사람은 어떻겠는가. 사랑을 받고 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가 곧고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애완동물들에겐 지극한 관심과 정성을 쏟는 사람들이 정작 자라는 청소년들에겐 그렇지 못하니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는 없다.

지금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자신의 애완동물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 보아야 한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처럼 말로 소통을 하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서 보듯이 모든 애완동물도 그 자신의 감정을 가지고 주인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보면 우리가 주위의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김갑수 두남학교 교사·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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