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가 필요한 아이들
작은 학교가 필요한 아이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9.1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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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여러가지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아이들과 이를 만류하는 부모들의 얘기가 적지 않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아이들이 학교를 떠날까 하는 질문에 이미 답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논점은 ‘왜’에 있지 않다. 예전의 학교를 떠올리는 분들은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 나오는 그런 시골학교의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풍금소리, 사루비아 꽃잎, 말벌만큼이나 두려웠던 송충이 그리고 낡은 종소리 등등이다.

그런 학교가 추억으로 남는 건 향수를 자극하는 환경 때문이 아니라 그 곳이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심이라는 것은 마음 한 가운데 있다는 뜻인데, 어떤 아이가 학교를 마음 한 가운데 두고 자기 삶을 지탱하려 할까. 그들에게 생활의 중심이 달라진지 이미 오래다.

학교를 그만두면 으레 학업을 중단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이건 맞지 않는 표현이다. 학업(學業)을 배움의 시작, 기초라고 해석하면 학교를 떠나서도 배움은 계속할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이 ‘공부’라는 것에 질려서 ‘배움’을 모른다. 그 결과 아이들은 검정고시라도 쳐서 인증서만 받으면 배움이 끝나는 걸로 안다. 또 학교와 학원에 가서 앉아 있기만 하면 배우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어떤 아이든 조금만 마음을 열고 주위를 살펴보면 주위가 온통 배움터라는 걸 안다. 새벽에 일어나 거리로 나가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기 삶을 힘껏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새벽시장의 분주한 손길들, 버스기사,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 등이 있다.

세상은 배움터이다. 우리가 매일 온 몸으로 만나는 곳이 모두 작은 학교이다. 그러니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까지도 사실은 모두 뛰어난 학습자이고 배우는 사람들이다.

학업을 중단한다는 것은 학교를 그만 다니는 것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배움을 중단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배움은 자율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자율은 한 인간이 윤리적, 인격적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다.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일에 대해 결정권이 주어졌을 때 그 일에 책임지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또 그렇게 형성된 힘이 한 사람의 인격을 결정한다. 따라서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배움’의 핵심이다. 학교 안에 있든, 그렇지 않든 모든 아이들에게 ‘배움’의 본질과 ‘학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구별케 해줘야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학교는 세상에 있다. 세상은 곧 학교이다. 그래서 문을 열고 세상의 작은 학교들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안교육현장에 있으면서 더 절박하게 느끼는 것도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갖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이다. 그건 자율적인 배움을 통해 이뤄낸 결과만이 한 아이가 삶을 해석하는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신념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마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몇 만명이라는 통계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이러한 배움을 이뤄낼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 우리 사회가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먼저 아이들에게 삶의 곳곳이 배움터가 되도록 문을 열어주자. 직업체험, 직장체험도 좋지만 그 직업의 소명과 가치, 윤리가 그 속에 녹아있음을 알도록 해야 한다.

가정은 아이들이 만나는 첫 번째 작은 학교이다. 그 곳에서 만난 첫 번째 선생님이 부모이다. 때문에 부모는 자신이 살아낸 삶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해석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깨달은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사회가 아이들의 다른 선택을 의미 있게 받아 줄 수 있는 열린 학교가 돼야 한다. 대안학교는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이 다니는 피난처가 아니다. 대안학교는 자신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가치와 삶을 선택한 아이들과 부모가 있는 곳이다. 그렇게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작은 학교가 왜 필요하냐고 물으면 작은 시냇가를 떠올려보라고 대답하라. 도란도란 흐르는 물, 마음 놓고 자리 잡은 돌맹이, 두 손 살포시 모아 떠야 아프지 않은 물고기, 어깨를 두드리는 바람이 그에 대한 대답이다. 작다는 것은 유약한 게 아니다. 작다는 것의 강점은 관계의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삶의 성공은 그 관계에 있다.

<문순현 사랑의학교 대안교육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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