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밤거리가 삼산동으로 바뀐 것은 재미
서라벌 밤거리가 삼산동으로 바뀐 것은 재미
  • 구미현 기자
  • 승인 2013.09.08 19:4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용이 가실에 빠진 인과성 적어
우리말 오페라 선율타기 어려워
▲ 창작 오페라단의 ‘처용’ 공연 중 도입부와 피날레를 장식한 ‘천상의 장면’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제공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이 서라벌의 밤거리에서 서울 강남이나 울산의 삼산동인 된 것은 즐거운 비약이었다. 그러나 대사를 음악적으로 전달하는데 딱딱함이 느껴졌고, 이야기 전개에서 인과성이 분명치 않은 점 등이 주저앉는 느낌을 줬다.

지난 주말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두 차례 공연된 오페라 ‘처용’(극본 김의경, 작곡 이영조)은 1987년 초연된 오페라 ‘처용’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줄거리는 같지만 대본, 무대, 의상, 음악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 듯했다.

이 작품은 9세기 말 통일 신라가 멸망하기 직전 헌강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무대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아닌 술과 음란이 횡행하는 이 시대의 번화가로 옮겨왔다.

의상도 신라시대 의상이 아닌 갈색 바바리코트에 머플러를 두른 ‘처용’과 유럽의 중세 귀족 의상을 입은 ‘세 귀신’을 등장시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느낌을 줬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페라 고유의 서양음악에 한국의 전통음악을 간간히 넣었다.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에 상징적인 의미가 곳곳에 숨겨져 있어 이를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천사와 옥황상제가 우산을 쓴 채 공중에 떠 있는 ‘천상의 장면’으로 시작한 첫 장면부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장면에서 초현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중절모, 레인코트 차림의 신사가 하늘에서 떼로 등장하는 작품 ‘골콘다(Golconda)’가 떠올랐다. 똑같은 의상에 똑같은 포즈를 취한 이 무개성한 천사들은 ‘겨울비’로도 불리우는 마그리트 작품에 등장하는 신사들과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보였다. 이들은 마지막에도 등장해 처음과 끝의 대칭을 이루고 있다. ‘골콘다’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던 인도의 옛도시로 쇠락해 폐허만 남은 곳이지만 여전히 부의 상징인 곳이다. 이는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에 황금이 가득한 도시 신라와 일맥상통한다.

또 9·11테러 등 현대문명 속에 일어난 재난의 장면을 무대 위 LCD화면으로 비춰 신라의 타락이 오늘날의 타락과 다름없지 않느냐는 화두를 제시했다.

금색 연등을 들고 펼친 제례의식 ‘팔관회’에도 강한 개성이 느껴졌고, 수십명이 불경을 외는 ‘승(僧)의 합창’은 장관이었다. 무대 위에 간이 무대를 설치해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비추는 연출은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시의원이자 성악가이기도 한 강혜순씨는 “처용 역의 테너 신동원과 처용의 아내인 ‘가실’ 역의 소프라노 임세경은 발성이 시원했고, 역신 역의 바리톤 우주호와 옥황상제 역의 베이스 전준한, 임금 역의 바리톤 오승용은 관록이 묻어나는 연기로 극을 살렸다”고 말했다.

반면 이 모든 장점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약점은 대사의 음악적 전달이 딱딱한 것이었다. 뮤지컬을 연출한 적 있는 박용하씨는 “스스로도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지만, 우리나라 말을 서구적 창법에 녹여 부드럽게 뽑아낸다는 것은 쉽지않다는 것을 이번에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스토리의 전개도 지나치게 압축됐거나 비약돼 인과성이 분명치 않다는 평가도 있었다. 극의 대본을 쓰는 김모씨(35)는 “처용이 가실을 사랑하게 된 과정이나, 가실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결과까지 이른 과정에 공감이 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재미가 덜했다”고 말했다.

‘처용’이 지나치게 각색돼 설화 속의 인물과는 전혀 이질적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설화의 처용은 역신과 아내의 부정 앞에서 춤을 추지만, 오페라의 처용은 향략과 부패로 망해가는 신라를 구하러온 몽상가이자 이상주의자로 그려졌다.

또 12세 관람가 치고는 선정적인 장면들로 자녀와 함께 온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구미현 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