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와 군화, 배꽃
시화와 군화, 배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8.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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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가 시화는 배꽃을 장미로, 시목은 은행나무를 대나무로 바꾸려 한다는 언론보도가 들리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배꽃을 해제하고 새로운 꽃으로 변경하려면 왜 변경해야 하는지 그 배경을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까지 배 산업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것 외에 변경에 따른 다른 설명을 듣지 못했다. 시민들에게 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울산과 배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는 게 순서다.

우리나라 배나무에 대한 문헌상 기록은 삼국사기에 ‘고구려 양원왕 2년(546년)에 왕도(평양)의 배나무가 연리(連理)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혜공왕(765~778) 때 각간대공의 집 배나무에 참새 떼가 많이 모였다’는 기록도 전한다. 1611년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 강릉의 천양배(天賜梨)를 비롯하여 정선의 금색배(金色梨), 평안도의 검정배(玄梨)와 대열이(大熱梨), 안변의 붉은배(紅梨) 등 5종류의 배 이름이 수록돼 있다. 1920년 원예시험장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국내에는 학명이 밝혀진 33종류와 학명이 밝혀지지 않은 26종류 등 59종류의 배가 있었다고 한다.

울산의 배는 1454년에 간행된 옛 지리지 세종장헌대왕실록지리지를 시작으로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역대 지리지에 울산 특산물로 실려 있다. 개항 이후에는 전국에서 ‘배하면 울산’으로 지목될 울산은 배의 고장이었다. 근대적인 배 과수원이 만들어 진 것은 1910년대로 구마모토 등 일본인들이 이주하여 배 농장을 경영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이때 재배 면적은 90㏊ 정도였다. 그러다가 1934년 100ha. 1945년 130㏊로 늘어났고 1961년에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공단개발로 변두리로 밀려났으나 재정비돼 1970년대엔 재배면적이 8천900㏊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배꽃이 1995년 울산 시화로 지정됐다.

2005년에는 ‘울산 보배’라는 고유 브랜드를 만들고, 그해 8월에는 첫 미국 수출 길도 텄다. 이보다 앞서 2003년에는 안영축마을과 내광마을의 청실배나무와 정골의 산돌배나무의 노거수가 조사돼 울산의 생명 문화재로서 ‘울산의 노거수’에 수록되었다. 안영축마을과 내광마을의 청실배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방기념물 정도로는 지정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배꽃은 상징화로 갖춰야 할 조건들을 두루 갖췄다고 본다.

배꽃이 상징화로 지정된 곳은 기초 지자체인 전남 나주시, 경기 평택시, 서울 중랑구 등이 중복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광역 지자체인 시도에서 배꽃을 시화나 도화로 지정한 곳은 없다. 이는 광역지자체 차원에서 상징화로 갖추어야 할 조건 가운데 타 지역과 중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시화로서 장미보다 배꽃이 낫다. 울산의 역사 문화적 배경, 동급 지자체 사이의 중복 지정에 따른 대표성의 상실, 환경 적응력과 수명장수, 지자체 산업과의 연계성, 관리비 절약, 외국에 대한 로열티 지급 등을 고려하면 장미보다 배꽃이 적절하다고 본다. 배꽃을 구경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모일 것인가 알아보려면 울산 대공원에 장미원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만큼 배나무 속 식물의 야생종은 물론 재배 품종을 모아 배나무원이나 배나무 공원을 조성해 비교하면 된다. 또 배나무 종류의 수집과 전시 및 기존의 배꽃 축제에 예산과 정성을 투자하면 장미 축제로 인한 효과에 지역 문화의 계승 발전과 배 유전자 자원의 확보와 보존이라는 효과를 추가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울산광역시의 시화와 울주군의 군화가 중복된다는 점이다. 울산시가 시화로 배꽃을 유지한다면 울주군의 군화를 다른 식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지자체 간에 생길 수 있는 혼란과 대표성의 논란을 방지할 수 있다. 반면 울산시가 시화를 다른 식물로 바꾸면 울주군은 배꽃을 군화로 유지하면 된다. 울산광역시가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이 시화를 바꿀 것이면 현재의 배꽃과 근연이고 재래종 배이면서 재배 배의 신품종 육종에 유전자자원으로 활용되는 청실 배꽃을 시화로 지정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청실배의 꽃을 시화로 지정하는 것은 지역 사회의 역사성과 문화적 배경도 있고, 동급 지차체와 중복되지 않으며, 재래종 배의 우수 유전자원을 보존하여 미래의 먹거리를 대비하는 등 여러 면에서 적합하다.

울산광역시가 시화를 현행대로 유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울산시와 의회 관계자 및 시민들이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결정내려야 한다.

<정우규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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