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우물파는 무대미술가
베트남에 우물파는 무대미술가
  • 구미현 기자
  • 승인 2013.08.1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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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화 씨 인터뷰
▲ 무대미술가 김이화씨.

베트남에 우물을 파기 위해 전시를 여는 무대미술가가 있다. 그는 영국에서 무대예술팀에서 일할 당시 감독으로부터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됐다. 서러웠던 동양소녀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작은 전시’였다.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설치예술인 ‘동화의 재해석(The SCRETS of Fairy-tale)’전을 연 김이화(24·여·사진)씨를 전시 마지막 날인 13일 오전 제4전시장에서 만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화장기없는 수수한 모습으로 나타난 김이화씨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말을 이어갔다.

“해고된 뒤 억울했어요. 실의에 빠져있는데 보조감독으로 같이 일하던 루마니아 친구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봉사활동을 함께 가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열악한 그곳들의 실정을 알게 됐죠.”

김씨는 지난해 귀국해 ‘Site Specific Art(장소특정예술)’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장소특정예술은 이야기와 설치예술이 만난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장르다.

“전시를 보고 난 뒤의 관람객 반응은 각양각색이에요. 신선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이게 무슨 예술이냐고 질타하는 분도 많아요. 처음에는 우리 사회에 당면한 문제를 노골적으로 전시에 표현했어요. 전시장에 쓰레기를 가득 채웠거든요. 그랬더니 관객들이 불편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비판하게 됐어요.”

▲ 김이화 무대미술가가 13일 전시장을 찾은 한 장애인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씨는 ‘동화의 재해석전’을 올해 4월 서울에서 연 뒤 두 번째로 울산에서 열고 있다. 전시 팸플릿을 판매한 수익금 전액은 베트남 우물파기 캠페인에 사용된다.

“서울전시회의 수익금은 23만원 남짓이었어요. 우물 하나 파는데 50만원이 드니까 하나도 못파는 셈이죠. 모자란 금액은 제 사비로 충당했어요. 이번 전시는 관람객 반응이 좋아 우물을 3개 정도 팔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일반 미술 전시와는 달리 설치전이다 보니 전시회를 여는 비용도 만만찮다. 그는 새벽반 영어강사로도 활동하며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전시장을 찾아줘서 정말 기뻐요. 오늘까지 400명 정도가 다녀간 것 같아요. 전시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서 그런지 장애인을 비롯해 우리 사회 소외계층도 많이 찾고 있어요.”

전시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준비한 팸플릿은 모두 동이 났다.

“팸플릿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한권에 1천원을 내는 사람부터 10만원을 내는 사람까지 가격의 스펙트럼이 넓죠. 1천원이든 10만원이든 모두 우물파기 캠페인에 동참하는 사람들이죠.”

울산이 고향이라는 김씨는 이번 전시가 끝나면 전국투어도 구상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전시를 열겠지만 고향인 울산이 제 작품활동의 중심이에요. 앞으로 김이화하면 ‘베트남 우물파기’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작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이화씨는 영국 국립런던예술대학교 BA(Hons) Design for Performance를 졸업했고, 2009년 런던국립극장·브라이튼 프린지페스티벌 특수 의상 디자이너, 런던현대무용학교 무대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또 지난해 런던 올림픽 개막식 무대예술팀으로 활동했다.

글·사진=구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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