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진실은 별다른 재미를 주지 못한다?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진실은 별다른 재미를 주지 못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8.31 20:4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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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최은창-가짜뉴스의 고고학
1997년 잊을 수 없는 해이다. 국가 외환 위기가 닥친 때다.

풍전등화(風前燈火)같았던 그 해, 우리나라 운명은 국제통화기금(IMF)에게 손을 벌려야 했고 나라 경제 구도까지 재편해야 하는 실정에 내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과 권력자들은 경제 위기나 외환 위기가 절대 아니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관련 기사도 쏟아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관련자들은 짐짓 책임을 미루고 언론들도 ‘그때를 잊은 듯’ 짐짓 모른 척하고 있다.

같은 해 일본 작가 시미즈 기타로(淸수水機太郞)저서, ‘유언비어의 사회학’이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그는 이 책에서 보도(報道)와 유언비어(流言蜚語), 둘 사이 성격과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보도는 기사라는 형식을 개입시켜 내용 출처 분명성, 객관화를 일차적으로 점검하지만 유언비어는 그저 떠도는 소문을 가공해서 사실인 양 꾸미는 일이다. 즉 인간 언어가 야수(野獸)들 사나운 이빨이 되어도 모르는 상황.

요즘은 달라졌는가? 언론은 진실을 지키고 있는가? 펜은 과연 힘이 셀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암울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작금 가짜뉴스와 유언비어는 마구 뒤섞여 아무런 제지 없이 유통되고 있다. 외형은 뉴스를 포장하고 내용은 허위정보로 채워졌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미 탈진실시대(post-truth)에 살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탈진실종‘이라 규정하고 정점에 있는 권력자들은 공갈빵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집단이라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허구 이미지를 창조하고 퍼뜨리는 능력 때문이라고 호되게 말했다.

사실 가짜뉴스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은창 책, ‘가짜뉴스의 고고학’은 그다지 내용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연이 확장되고 거짓이 공고화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한 해결방안과 고민 등은 한번 들여다 볼만하다.

그는 심화되고 있는 페이크(fake) 현상을 수용자들 심리 성향, 필터링 없는 소셜 미디어, 노골적인 정파적 보도, 트래픽을 유도하는 클릭 유도 미끼(page view)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정보 진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덩치를 키우는데 골몰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가짜뉴스가 확산시키는 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언론 게이트키핑(gatekeeping) 기능은 사라졌고 자주 노출되는 소문이나 ‘찌라시’에 불과한 정보가 진짜로 둔갑하는 세상이 되었다.

책 제목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고고학까지 끌어들였다. 가짜뉴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심정이 엿보인다.

18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근대 신문업계는 ‘믿거나 말거나’ 기사를 써서 돈을 벌었다. 거짓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니까. 기사 질적 수준, 평판, 신뢰성보다는 ’개나 줘버려‘라는 방법을 택해 대중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구조를 대다수 신문사는 경영 원칙으로 삼았다. ‘페니 페이퍼’(peney paper), 즉 동전 1 페니(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5원 정도.)면 쉽게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신문을 사볼 수 있었다. 황색 저널리즘 전성시대였다.

허위정보는 여론을 조작한다. 대중은 이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확증편향’이 심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자신이 세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나간다. 증거 수집도 선택적으로 한다. 무서운 질환(疾患)이다.

왜? 진실은 재미가 없어서? ‘걸리버 여행기로 잘 알려진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거짓은 빠르지만 진실은 절름발이여서 항상 늦게 도착한다’고 한탄했다. 가짜뉴스 규제론이 고개를 다시 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더 늦기 전에. 진실이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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